200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빠삐루파, 빠삐루파 / 김애현
1.
쩍. 아버지가 나무젓가락을 가른다. 깔끔하게 나눠진 나무젓가락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는 비닐봉지 안에서 삼겹살 한 점을 꺼내 팬 위에 올려 놓는다. 살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팬에 들러붙는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려고 허리를 구부린 아버지 너머로 나는 창 밖을 바라본다. 가스버너의 불처럼 햇살이 드세다. 가운데가 봉긋 솟은 둥근 팬 위에 본격적으로 삼겹살이 올려진다. 언뜻, 붉은 반점처럼 보인다.
아버지가 쥐고 있는 나무젓가락 끝에 연한 핏물이 묻어있다. 펼쳐 놓은 신문지 위로 기름이 튄다. 아버지가 바싹 익은 삼겹살 두 점을 그의 앞에 놓인 접시에 놓는다. 아, 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젓가락을 든다. 그러나 선뜻 입에 대지 않는다. 아버지는 병마개를 비틀어 열고 그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아, 예. 잔을 들고 그는 또다시 망설인다. 아버지가 그를 바라본다. 그는 마지못해 술을 입 안에 털어넣는다. 그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재빨리 삼겹살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린다.
“조카라는 놈이 사돈의 팔촌보다 보기 힘들구나. 대체 이게 얼마만이냐.”
그는 대꾸도 없이 고기를 씹고 있다. 아버지의 말이 반갑다는 인사말로 들리지 않는 게 분명하다. 하긴, 아홉 번씩이나 아버지의 초대를 거절한 그로서는 끌려오다시피 와 있는 셈이니 그 어떤 말도 달가울 리 없겠다. 나는 비닐봉지 안에 수북이 쌓여있는 분홍빛 살점들을 바라본다. 숨이 막힌다.
이미 친적들에게는 잘 알려진 아버지의 고기대접은 협박성 퍼포먼스다. 처음, 아버지는 자신이 의도한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불러들여 끊임없이 고기를 굽곤 했다. 한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불러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아버지는 제 발로 찾아가 고기를 굽는다.
오늘처럼 내 일자리 부탁을 위해 고기를 굽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돈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요구하는 액수가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고기대접을 받느니 차라리 주고 말지, 라고 생각해왔던 것도 그 탓이다. 하지만 두 해 전부턴가, 사정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아버지의 고기대접에 이력이 붙은 것이다. 아버지가 그의 집을 찾아가 무려 일곱 차례나 고기를 구웠던 것도, 그가 이제야 찾아온 것도 다 그 까닭이다. 고기를 굽기 전, 나무젓가락의 갈라진 형태로 운세를 점쳐야 할 만큼 아버지의 퍼포먼스는 이제 쇠락의 기운이 드리웠다.
기름이 튀었는지 그가 놀란 듯 움찔한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어떤 술수에도 휘말리지 않으리란 표정으로 그는 입을 다물고 있다.
“너, 좋은 구경 한 번 할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본다. 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나무젓가락을 든다. 지금부터 나는 아버지대신 고기를 구워야 한다. 팬 위에서 제각각 익어가는 살점들의 무질서를 다스려야 한다.
아버지가 느릿느릿, 색 바랜 셔츠를 벗는다. 그는 흘끔거리며 아버지의 단단한 팔 근육을 훔쳐본다. 웃옷을 벗은 아버지는 러닝머신을 향해 두 팔로 걸어간다. 퍼포먼스의 절정이랄까. 수북이 남아 있는 분홍빛 살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가 나를 노려본다. 공범에게 보내는 눈빛이다. 나는 아직 아버지가 일러준, 독 오른 뱀처럼 머리를 빳빳하게 쳐드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눈길을 슬그머니 피한다. 그러다가 흘끔, 그를 훔쳐본다.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이제 막 FD(Floor Director)보조딱지를 뗀 그의 안부가 족보의 사다리를 타고 급기야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풍문으로 부풀려졌을 때,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체 했던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라칸. 그가 일하는 곳에서 이름 대신 그렇게 불린다던가. 궁색한 처지로 보면 자식 노릇을 톡톡히 해내는 그를 작은 아버지는 칭기즈칸이라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가까스로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그러나 쉽사리 팔을 내딛지는 못한다.
열 네 개의 롤러가 가로로 누운 채 비스듬히 경사를 이룬 수동의 러닝머신은 무엇보다 내딛는 힘의 안배가 중요하다. 무심코 발을 내딛었다가는 핑그르르, 돌아버리는 롤러 때문에 벨트 위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몸 쪽 가까운 곳에 첫발을 내딛어. 올라선다는 기분으로 말야. 그런 다음 다른 발을 앞으로 내딛는 거다. 그 발에 힘을 옮겨주면 롤러가 구르면서 발이 미끄러져. 그러면 재빨리 다른 발로, 벨트를 밟아 내린다는 생각으로 걷는 거야. 처음엔 걷는 것처럼 하란 말이다. 알았냐?
뒤에서 내 허리를 잡은 채 아버지가 말했지만 어릴 적 나는 늘 욕심껏 발을 내딛었다. 먹으면 키가 큰다는, 쓰디 쓴 한약을 마시는 일보다야 러닝머신 위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차라리 좋았던 나이였다. 검은 색 러닝벨트 위에 발을 내딛기만 해도 숨겨진 내 키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것만 같았다. 거저 준다 해도 고개를 내저을 만큼 고물이 되었지만 러닝머신은 한 때 집 안에서 가장 폼 나던 물건이었다. 그 때, 아버지에게는 두 다리가 있었고 나는 더디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롤러가 구를 때마다 나는 오래 앓은 기침소리를 떠올린다. 그 기침 끝에 `한 때 좋았던 기억'이 가래처럼 떠밀려 나오곤 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아버지와 내게 술을 권하고 누구에게인지 모를 적의만을 충동질할 뿐이었다.
드륵 드르륵. 아버지가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다.
“저어….”
그의 말소리는 롤러가 돌아가는 소리에 파묻힌다. 그가 아버지를 돌아본다. 돌아보다가 흠칫, 놀란 듯 다시 고개를 돌린다. 두 팔로 러닝머신 위를 걷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힘에 부쳐 보인다. 그가 나를 바라본다. 제발 이쯤 해 둬. 그의 눈길이 간절해 보인다. 이쯤 해두고 싶은 것은 오히려 나다.
“아버지. 아버지이-!”
아버지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턱으로 그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그만두라는 사인을 보낸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부른다. 아버지에게,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오는 일은 그 위에 오르는 일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뒤에서 러닝벨트를 발로 밟는다. 롤러가 멈춘다. 허리를 구부려 안으려 하자 아버지가 나를 슬쩍 밀친다. 끝까지 보여주겠다는 속셈이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아버지는 두 팔로 그가 앉아 있는 앞으로 걸어간다. 마침내 아버지가 그를 마주보고 앉는다. 그리고 벗어놓았던 셔츠를 입는다.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야지 안 그랬다간 혼자서 기저귀 못 갈 게다.”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두 개 남은 셔츠 단추를 잠근다.
“저어…, 제가 시간이 좀 그래서….”
“바쁘냐?”
“예, 오늘 일정이 좀 빡빡하네요.”
“그래도 그 고기 다 먹고 가라.”
그는 접시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좁힌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가 건네준 휴지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그가 또다시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의 매서운 눈길을 피해 나무젓가락만 만지작거릴 뿐이다. 그때 아버지가 말문을 연다.
“방송국서 일한다면서. 종종 너 좀 찾아가도 되냐?”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왜? 다리가 없어서 못 찾아 갈 것 같으냐? 지금껏 뭘 봤냐. 두 팔로도 얼마든지 찾아 갈 수 있다, 난.”
“그게 아니고요. 그게, 그러니까 저의 아버지께서 방송국하고 프로덕션하고 헷갈리신 모양이에요.”
-방송국은 무슨 얼어 죽을 방송국. 명함에는 덕일프로덕션이라 적혀 있는데도 새로 생긴 방송국이라고 바득바득 우겨대는 데야, 원. 아무튼 방송국에 드나드는 낌새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의 아버지와 만나고 돌아온 날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헷갈린 것은 그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글쎄다, 그게 그거 아니냐?”
여전히 헷갈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대체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그의 말투가 아예 삐딱하다.
-그럴 땐 뚝 잘라 말하는 거다. 에두를 것 없이 바로 몸뚱이만 턱, 내놓아야 한단 말이다.
그런 말버릇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반토막'이라 부른다. 그리고 반 밖에 남지 않는 몸처럼 양심이나 예의 따위가 절반으로 줄어든 아버지를 또한 그렇게 부르곤 했다.
“뚝 잘라 말하마. 저 놈 좀 도와줘라.”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턱으로 나를 가리킨다. 그가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키 말고는 모자랄 것 없는 놈이란 걸 너도 잘 알게다.”
그가 난색을 보인다.
“뭐든 열심히 한다. 이때껏 그랬다, 저 놈은.”
그 말은 도움을 받으려는 아버지 나름대로의 시나리오 대사이긴 하지만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어디 일 뿐인가. 키가 영영 크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에서 떨어져 나오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열심히 몸부림쳤는가 말이다.
“프로덕션이라는 게 듣기야 그럴싸해도…, 그러니까 아주 열악하단 말이죠. 물론 우리 쪽에도 저 애 같은 놈이 한 명 있긴 해요. 저 애보다야 키는 크지만요. 빠삐루파를 맡고 있는 놈인데….”
두 살이나 위인 나를 가리켜 `저 애'라 부르는 그의 말에 꿈틀, 내 속의 난장이가 움직인다.
난장이를 처음 본 건 내 좁은 보폭 사이에서다. 그 때, 정수리에 쏟아지던 햇빛이 따가웠던가. 내 두 발이 빠져 있는 난장이의 물큰한 몸은 진한 콜타르처럼 보였다. 한껏 보폭을 늘려 걸어보았지만 난장이는 내 두 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키가 원망스러웠다. 그럴 때면 난장이도 나처럼 내 작은 키를 나무랐다. 왜 이리 작은 거야? 난장이는 늘 물 끓는 소리를 냈다. 해가 지날수록 또래들과 현저히 키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난장이는 좀 더 큰 소리로 부글댔다. 클 거야, 쑥쑥 자라고 말 거야, 두고 보라지. 그런 난장이는 곧잘 아버지와 싸우곤 했다.
`반토막'이 된 아버지는 술을 마실 때마다 두 다리가 잘려나간 뭉툭한 곳을 쓰다듬었다. 늘 안주 대신 무언가를 곱씹는 얼굴이었다. 그 날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버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술 냄새가 코끝으로 몰려들었다. 넌 언제 클래? 그렇게 말하던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여느 때처럼 뭉툭한 그곳을 쓰다듬고 있었다. 내 시선은 그곳을 매만지는 아버지의 손길에 붙박여 있었다. 그 모습은 영 영 사라진 아버지의 두 다리처럼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거라고 빈정대는 것 같았다. 뚜껑을 들썩이는 수증기처럼 난장이는 가쁜 숨을 뿜어내며 말했다. 아냐, 절대 아냐, 나는 난장이가 아냐, 나는 나야! 그때 내 열 손가락 끝으로 맹렬히 모여드는 살의에 목을 내맡긴 아버지의 눈빛은 섬뜩할 만큼 고요했다. 얘야, 걷고 싶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두 다리가 큰 소리로 집안을 걸어 다녔다. 그 날 이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난장이를 잊기 위해 `뭐든 열심히 한다. 이때껏 그랬다', 나는.
그는 여전히 빠삐루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득 아버지가 미간을 좁힌다. 그의 빠삐루파가 너무 멀리 갈 요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빠삐루파와 함께 동화 속으로 빠져들던 그의 말을 자르며 아버지는 주먹 쥔 손으로 방바닥을 내리친다.
2
빛을 향해 걷는다. 몸에 스민 눅진 기운을 조금이라도 말려볼 생각에서다. 오후 네 시. `제3스튜디오'를 빠져나온 나는 홀의 왼쪽 비상계단 출입구와 화장실 입구가 `ㄱ'자 형태로 바라보고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그곳에 빛이 남아 있을 것이다.
뻐근한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마음은 급하고 걸음은 더디다. 그런 내 모습은 오리나 난장이에 곧잘 빗대어지곤 한다. 상체가 앞으로 쏠리고 두 다리는 늘 뒤로 처진 모습 때문에 혹은 짧은 보폭 때문에. 그 모두가 유난히 작은 키 때문에 듣는 말이다. 연령과 신장의 상관관계로 따지자면 내 키는 평균치에서 한참이나 모자란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쑥덕대는 것처럼 내가 난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키 순서대로 줄을 섰던 그때, 분명 나는 `뒤쪽 아이'였으니까. 지금 내 키가 중학교 일학년 남자아이의 평균 신장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다지만 괘념치 않는다. 어릴 적, 사람들이 내 까칠한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남자 아이란 어느 순간 훌쩍 키가 크더라는, 증거불충분의 속설을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바삐 떠날 채비를 마친 사람처럼 빛은 비상계단 바로 옆 유리창을 사선으로 내리 그으며 남아있다. 빛의 한끝이 날카롭다. 나는 돌아서서 벽에 등을 기댄다.
어둑한 제3스튜디오 안에서 나는 꼬박 두 시간 십 여분을 서 있었다. NG가 나길 바랐지만 프로그램의 녹화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매끄럽게 끝나버렸다. 말 그대로 서 있다가 나온 셈이다.
서 있는 일은 내 일 중 하나다. 그러나 오늘 같이 NG 한 번 없이 프로그램의 녹화가 끝나는 날이면 서 있는 일이 내 일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 일은 내가 받는, 적은 보수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나 같은 FD보조는 받는 만큼 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일하는 만큼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적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받으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적게 받는다고 일도 그에 맞게 했다간 신참내기 보조에게 일을 뺏기기 십상이다. 설사 일이 없다 해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야 하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연줄이나 학연 따위의 인맥이란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허드레꾼'으로 불리는 나에게는 안면을 트는 것이 더 요긴하다. 눈에 자주 띄어라! 일 년여의 보조딱지를 떼고 당당히 FD가 된 `여라칸'의 어록 중 하나다. 나는 그 말을 믿고 따른다.
-NG! 카메라에 나뭇잎이 잡혀, 누가 좀 떼어 내.
-NG! 책상 좀 치워봐, 그림이 안 좋잖아.
조정실에서 소리가 들리면 나는 총알같이 스튜디오를 향해 뛰어나간다. 여라칸의 말처럼 조정실의 누군가는 메인 카메라에 잡힌 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의식하면서 일을 해치운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에 적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나를 보고 있던 조정실의 누군가는 스튜디오 안에 난쟁이가 들어왔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라칸의 시나리오대로라면 그리 걱정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시나리오가 주조정실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날을 꿈꾸는 여라칸, 자신만을 위한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만 된다면야 주조정실의 누군가에게 나를 아주 일 잘하는 FD지망생으로 소개시켜주는 것은 사소한 것이라는 여라칸의 말을 내심 믿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죄고 있는 것은 여라칸의 그 시나리오다. 거기에는 여라칸 대신 내가 떠맡아야 할 잡다한 일들로 가득하다. 동선을 알려주는 지문이나 그럴싸한 배경음악 따위는 없다. 그래서 나 같은 FD보조에게는 삼, 육, 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FD보조는 삼일을 버티기 힘들고 육 개월을 견디면 겨우 얼굴이나 알리게 된다. 그리고 구 개월이 지날 쯤 비로소 상대방은 FD보조의 이름 석 자를 불러준다는 삼, 육, 구.
고개를 돌려 유리창을 쳐다본다. 햇빛에 두 눈이 따갑다. 눈을 끔벅여보지만 부질 없다. 두 눈을 부비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틀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 중이다. 또 누구에게 조난신호를 보내고 있을까.
-기저귀 값으로 보태달라는 데야 몇 푼인들 안 내놓겠냐.
아버지는 도움을 청한 것이라지만 상대방에겐 뜯긴 것이나 다름없는 돈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전화 한 통은 누군가 보낸 행운의 편지만큼이나 달갑지 않은 것이다.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여전히 통화 중이다. 수화기를 든 아버지의 모습이 내 명치에 걸리고 만다. 휴대폰을 닫는다. 울컥, 목이 멘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여라칸이다.
`너, 어디야?'
여라칸은 대뜸 목소리부터 높인다.
'어!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나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돌아본다. 여라칸이 내게 오고 있다. 여라칸은 오자마자 내 뒤통수를 가격한다. 딱!
“빠져 갔구는. 몰골 봐라. 고작 이틀 밤샘하고 이 꼴이냐? 그래가지고서야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버티겠어?”
여라칸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인다. 내게 핫브레이크를 내민다. 나는 파란색 포장지의 한 귀퉁이를 이로 뜯어낸다. 땅콩과 초콜릿이 버무려진 핫브레이크는 반쯤 녹아 있다. 두 손가락으로 가운데를 조이자 힘없이 반으로 나눠진다. 핫브레이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이에 진득진득, 초콜릿이 들러붙는다.
여라칸이 신경질을 내며 휴대폰의 플립을 연다.
“빠삐, 어딨는지 몰라?”
휴대폰의 버튼을 누르며 여라칸이 화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침에 버무려진 핫브레이크를 꿀꺽, 삼킨다. 여라칸의 휴대폰은 몇 번이고 열렸다가는 소리 나게 닫히고 만다. 나는 나머지 핫브레이크를 씹으며 여라칸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여라칸은 갈퀴손을 만들어 연신 저의 머리칼을 박박 쓰다듬는다. 그의 앞에서 나는, 먹는 즐거움은 고사하고 이 사이에 낀 땅콩조각을 파내느라 혀끝이 뻐근한, 핫브레이크를 마침내 삼켜버린다. 여라칸이 나를 바라본다.
“너, 말야. 빠삐루파 해볼래?”
여라칸의 소개로 일하게 된 프로덕션으로 출근을 한 지 삼 일째 되던 날, 나는 그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빠삐라고 불렀다. 빠삐루파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여라칸이 내게 말했다.
빠삐루파는 십 오 분짜리 유아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 분홍빛 살갗의 빠삐루파는 커다란 버섯집에서 살았다. 그곳으로 다람쥐와 토끼가, 때론 개구진 외계인과 아이들이 찾아온다. 빠삐루파는 그들과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곧잘 춤도 추었다.
얼마 전, 프로그램의 중간 부분에 새로이 끼어 넣은 영어꼭지의 길잡이가 된 뒤로부터는 영어도 배우고 있다. 그러나 빠삐루파는 프로그램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빠삐루파와 동화 속으로’란 꼭지에서 단연 돋보였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주문처럼 제 이름을 외치며 빠삐루파는 소용돌이를 부른다. 그리고 그 속으로 두 명의 아이들과 동화여행을 떠난다. 동화 속에서 빠삐루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어느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주문 때문이었다. 그것이 마법처럼 모든 것을 이뤄준다.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온 빠삐루파는 `쑥쑥튼튼 체조'를 마치고 분홍빛 대문 앞에 선 채 손을 흔들었다. `안녕,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내일 또 만나요'까지, 빠삐루파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프로그램의 곳곳을 누볐다.
한 때 연극배우였다고도 하는 빠삐는 유명한 빠삐루파만큼 대접받지 못한다. 빠삐루파의 탈은 소품실 한 곳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탈을 벗은 빠삐는 아무데서나 토막잠을 잔다. 빠삐루파의 분홍빛 피부는 늘 뽀송뽀송하지만 탈을 벗고 난 빠삐의 몸은 습하다. 그런 빠삐의 곁에 있으면 단내든 땀내든, 꼭 한가지쯤은 냄새가 풍겼다.
-가려워 미치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빠삐의 얼굴은 울긋불긋, 반점이 퍼져 있었다.
-긁어도 시원찮고. 이젠 따갑기까지 해요.
빠삐는 내가 등을 긁어줄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아토피래요. 나, 전에는 그런 것 없었는데.
빠삐는 내게 팔을 펴보였다. 팔이 접히는 곳에 피가 맺힌 상처가 보였다.
-내가 언제 이랬는지 몰라요. 아마 자면서도 긁는 모양이에요. 약을 발라도 그때뿐이고…. 그 놈의 빠삐루파.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 모양이라니깐요.
빠삐의 피부병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그 놈의 뱃가죽을 갈라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어요.
녹화를 마치고 나면 빠삐는 빠삐루파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NG! 그게 쓰다듬는 거야? 치고 패는 거지.
아토피 때문인지 혹은 증오심 때문인지 빠삐의 행동은 거칠었다. 자주 NG가 나고 녹화시간은 차츰 길어졌다. 빠삐를 향한 사장의 욕설도 늘어만 갔다. 붉은 얼굴의 빠삐는 늘 햇빛을 찾아다녔다. 녹화 중에 잠깐 틈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버려 여라칸을 애먹이곤 했다. 물론 빠삐를 찾아나서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마지막으로 빠삐를 본 것은 빛이 드는 창가에서였다. 빠삐의 얼굴은 초췌해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헝클어진 빠삐의 머리칼에서 지독한 땀 냄새가 났다. 히죽, 웃는 빠삐의 입가에는 마른버짐이 피어 있었고 두 눈은 허기진 사람처럼 퀭해보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귀엽고 앙증맞은, 늘 행복해보이기만 한 빠삐루파를 떠올렸다.
나는 사라진 빠삐를 생각하며 괜스레 목덜미를 긁는다.
“할 거야? 말 거야?”
여라칸이 내게 다그친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난다. 반토막인 아버지가 내 머릿속을 두 팔로 걸어다닌다. 아버지가 지나간 곳에는 손자국만이 남는다. 내 머릿속이 아프고 쓰려온다.
“뭐 키도 엇비슷하고, 아니 좀 더 작지만…. 예, 예…. 당장 다음 회분 녹화가 문제여서….”
어느새 여라칸은 사장과 통화중이다.
“아, 예…, 그건 그런데요. 얘가 아주 열심히 하거든요, 뭐든지. 즈이 아버지 기저귀 값이라도 벌겠다는 데야 어쩌겠어요, 시켜보는 수밖에요.”
여라칸이 휴대폰을 든 채 내게 운 좋은 줄 알라고 입모양으로만 말한다. 마침내 통화를 마친 여라칸이 눈알을 부라리며 내게 소리친다.
“뭐해! 빨리 키높이운동화 사와!”
나는 수건을 이마에 터번처럼 둘러매고 키높이 운동화를 신는다. 빠삐루파의 등 쪽 지퍼를 내린다. 검은 천이 덧대진 빠삐루파의 속은 어둡고 갑갑해 보인다. 여라칸은 어서 들어가라 재촉한다.
빠삐루파의 신발 속으로 내 두 발을 드민다. 팔을 끼울 차례다. 불룩한 배에 비해 빠삐루파의 두 팔은 유난히 가늘다. 손가락은 네 개 뿐이다. 어느 손가락에 내 손가락 두 개를 겹쳐 끼울 것인지 고민스럽다. 여라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 등 뒤로 다가온다. 나는 재빨리 양 손을 끼워 넣는다. 여라칸이 서둘러 지퍼를 올려버린다. 지퍼가 뒷덜미에서 멈춘다. 목이 조인다. 여라칸이 빠삐루파의 탈을 들고 내 앞에 선다. 검은 구멍이 보인다. 갓난아기의 머리만한 크기다.
-머리 뒤쪽 아래가 갈라져 있어요. 그 부분에 고무줄이 덧대어 있어서 벌리기만 하면 되거든요.
빠삐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입구를 두 손으로 벌린다. 검은 구멍이 입을 한껏 벌리고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 보긴요, 눈으로 보죠. 멀리서 보면 까맣고 동그란 눈이지만 실은 아랫부분이 반달모양으로 뚫려 있어요. 거기루 내다보는 거죠. 잘 보일 리가 있나요, 대충 감으로 찍는 거죠. 그러니까 빠삐루파는 항상 제자리에서 호들갑만 떠는 거라구요.
탈을 쓰자 반달모양의 구멍으로 여라칸이 보인다.
“자, 아까 연습한 대로야. 동작은 크게! 그래야 분명해져, 알았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냐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여라칸은 벌컥 화를 낸다.
“고개를 끄덕여 보란 말야!”
나는 두 손으로 빠삐루파의 탈을 위 아래로 흔들어준다. 탈이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이 휘청거린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소용돌이 속으로!”
여라칸이 외친다. 나는 소리에 맞춰 한 팔을 높이 들고 빙그르르, 제자리에서 돈다. 어지럽다. 순간, 몸이 기운다.
“NG!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되냐. 팔은 높이 쳐들고 카메라를 향해서 손바닥이 보이도록 활짝 펴란 말이다! 다른 한 손은 엉덩이에서 앙증맞게, 앙증맞게!”
하지만 나는 빠삐루파의 엉덩이가 어디쯤인지 감을 잡지 못한다. 엉덩이 뿐인가. 볼에 손가락을 대고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라는 여라칸의 말에 나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옆으로 쓰러지고야 만다. 여라칸은 의자에 앉아 발끝을 까닥이며 나의 작은 키와 열악한 필에 대해 연신 불만을 터뜨린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소용돌이-, 얏! 친구랑 함께 떠나는 동화 나라! 즐겁고! 재미난! 얘기들! 우리 모두-, 빠삐루파와 함께!”
여라칸의 노랫소리에 맞춰 빠삐루파가 된 나는 춤을 춘다. 숨이 차다. 더운 입김이 얼굴을 뒤덮는다. 하하, 호호, 까르르. 여라칸이 흉내내는 빠삐루파의 여러 웃음소리에 맞춰 고갯짓을 한다. 큰 소리로 웃을 때는 탈을 뒤로 크게 젖히거나 앙증맞은 웃음에는 양 옆으로 살짝살짝 탈을 움직인다. 배를 움켜쥐고 웃을 때는 고개를 앞으로 숙여주어야 했다. 고갯짓을 할 때마다 무거운 탈 때문에 목이 뻐근하다. 그때마다 어금니를 문다. 힘주어 문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진다.
여라칸은 쉴 새 없이 NG!, 우렁차게 외친다. 키높이운동화를 신은 탓인지 발목이 시큰거린다.
빠삐루파의 커다란 신발과 키높이운동화의 무게까지 고스란히 두 다리로 전해져온다.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다. 무거워서 춤을 추기가 버겁다. 춤을 춰도 신나지 않다. 내 몸이 축축이 젖는다. 빠삐루파의 몸에 맞추느라 옷이며 양말이며, 나는 몇 개씩 껴입고 신었다. 그 생각을 하자 몸이 조여 온다. 갑갑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나는 빠삐루파이시다. 주문을 외듯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신나는 빠삐루파, 행복한 빠삐루파… 나를 짓누르는 빠삐루파. 내 키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꿈틀, 내 속의 난장이가 움직인다.
3.
현관문에 열쇠를 꽂는다. 목덜미가 가렵다. 어깨에 멘 가방을 힘껏 추스른다. 키높이운동화가 든 가방은 늘 무겁다. 신발을 벗으며 거실 쪽을 바라본다. 불이 켜져 있는데도 어둑하다. 집 안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하다. 냄새가 가려움증을 부추긴다.
반쯤 열린 방 안을 기웃거린다. 얄팍한 요 위에 누워 잠든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멀지 않는 곳에 파수꾼처럼 두 개의 소주병이 나란히 놓여 있다. 나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방 안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간다. 몸을 웅크리고 깔아놓은 요 근처를 살핀다. 비디오테이프가 발끝에 걸린다. 제목도 표지도 없다. 뭘까, 궁금하다. 그러나 코끝에서 더욱 스멀거리는 냄새가 궁금증을 가로막는다.
벽 쪽에 검은 비닐봉지가 있다. 다가가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똘똘 뭉쳐놓은 기저귀가 가득 들어차 있다. 비디오테이프와 비닐봉지를 들고 방을 나온다.
싱크대의 맨 아래 서랍에서 쓰레기봉투를 꺼낸다. 바닥에 앉아 기저귀를 꺼내 쓰레기봉투 안에 넣는다. 최대한, 빈틈없이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 꺼낸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는 삼 일은커녕 오늘 하루로 끝장이다. 사실 아버지는 기저귀 차는 일을 그 어떤 일보다 수치스럽게 여긴다. 사람들에게 기저귀 값으로 돈을 받아내면서도 말이다. 내가 없으면 아버지도 별 수 없이 기저귀를 차야 하지만 급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해결한다. 하지만 내가 없는 이틀 동안 쓴 것 치고는 양이 많다. 두 팔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아홉 개 째 기저귀를 꺼내다가 나는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본다. 수상쩍은 냄새가 진동한다. 비닐봉지를 거꾸로 든다. 기저귀가 바닥에 쏟아진다. 그 중 가장 얄팍한 기저귀를 집는다. 처음 꺼낸 것처럼 뽀송뽀송하다. 기저귀를 펼친다. 누릿한 흔적이 보인다. 니 에미가 꿈에 보여. 그런 다음 날이면 아버지는 기저귀에 정액을 묻히곤 했다. 아버지의 정액이 묻은 기저귀는 모두 세 개다. 쉰둘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아버지의 성기를 세 번 씩이나 밀어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불룩해진 쓰레기봉투를 들고 현관문을 연다. 쓰레기봉투를 복도 벽에 기대어 놓고 손을 툭툭, 턴다. 문득 손이 가렵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긁는다. 손바닥 여기저기 살갗이 벗겨지고 있다. 붉은 빠삐의 얼굴처럼 가을 보다 먼저 내 몸에 단풍이 들 것이다.
몸을 긁적이며 집 안으로 들어온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의 어둑한 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본다.
빠삐루파가 분홍빛 대문 앞에서 춤을 춘다. 나는 그 장면에서 두 번의 NG를 냈었다. 열심히 추다가 엉덩이가 닿는 바람에 대문 한쪽이 열려서, 한 번. 대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 빠삐루파의 탈이 걸려 또 한 번. 빠삐루파가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다. 컴컴한 스튜디오 벽과 만날 뿐이다. 다음 장면을 위해 세트가 세워질 동안 나는 선 채로 벽에 기대 몸을 긁곤 한다. 그러나 뭉툭한 빠삐루파의 손으로 가려운 곳을 긁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면 빠삐루파의 탈을 벗어던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마저 가려움을 부추긴다. 화면 속 빠삐루파의 버섯집으로 영어마을 선생님이 찾아온다. 빠삐루파가 반가이 껴안은 장면에서 얼굴을 살짝 찡그린 선생님 때문에 또 NG가 났었다. 그날 영어마을 선생님은 무려 일곱 번의 NG를 냈다. 쏘리. 주조종실을 향해 싱긋, 웃을 뿐 내겐 이렇다 할 사과의 말이 없었다. 나는 화면 속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개새끼, 하고 중얼거린다. 리모컨의 빨리감기 버튼을 누른다. 빠삐루파가 미친 듯이 돌고 웃고 춤춘다. 그 속도에 맞춰 목덜미를 긁는다. 긁어도 시원치 않다. 살갗이 따갑다. 가렵고 따가워서 미칠 것만 같다. 빠삐루파가 손을 흔든다. 내일 또 만나자고? 나는 리모컨을 집어 던지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뚜껑을 연다. 물을 들이킨다. 차가운 물이 입에서 넘쳐난다. 넘쳐난 물이 목을 타고 쇄골 쪽으로 흐른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손등으로 물을 닦는다. 바닥에 기저귀 하나가 떨어져 있다. 주저앉아 기저귀를 만지작거린다. 그 놈 참 귀엽더라.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빠삐루파의 몸짓 하나 하나가 실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나의 힘겨운 손짓발짓이란 사실을 잊은 채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용돌이에 휘말려 동화 속으로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나는 기저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술에 취한 채 빠삐루파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내 눈앞에서 소용돌이친다. 소용돌이는 어둡고 습한 빠삐루파의 속에 나를 내려놓는다. 반달모양의 구멍 밖으로 반토막인 아버지를 내다본다. 아버지의 두 팔은 더욱 더 약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 많은 기저귀를 써야하고 하루 종일 수화기를 든 채 누군가에게 기저귀 값을 구걸한다. 아버지는 말랑말랑한 그리움을 곱씹으며 기저귀에 정액만 흩뿌리고 단단했던 팔로 소주병을 움켜쥔 채 빠삐루파와 동화 속을 지치도록 헤맨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나는 빠삐처럼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연신 주문을 외우며 일어선다.
러닝머신 앞에 선다. 한 발을 내딛고 그 발에 힘을 옮긴다. 롤러가 구를 듯 움찔거린다. 발바닥에 힘을 주어 롤러를 누른다. 다른 한 발을 낡은 러닝벨트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숨을 고른다. 오른 발을 조금 앞으로 내딛는다.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조심스레 걷는다. 드륵드륵. 롤러가 움직인다. 보폭을 조금 넓혀 걷는다. 롤러는 좀 더 큰 소리를 낸다. 나는 난장이다. 빠삐루파 속, 난장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뛴다. 집 안 가득 롤러가 구르는 소리가 진동한다. 멈추지 않고 뛴다. 힘을 다해 뛴다. 빠삐루파, 빠삐루파, 소용돌이 속으로! 난장이가 소리친다. 숨이 차오른다. 인터폰이 울린다. 쳐다보지 않고 뛴다. 돌아가는 롤러 소리에 묻혀 벨소리는 희미하지만 제법 끈질기다. 그때다.
“뭐여!”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인터폰의 수화기를 든 채 아버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애비 기저귀값 벌려고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온 내 자식이 운동 좀 하겠다는데!”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낸다.
<끝>
당선소감 심사평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8편의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앞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술방식(문장과 구성)에 좀 더 힘을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합장(최명숙)' `사막을 걷다(김정남)' `양파(조현주)' `빠삐루파 빠삐루파(김애현)' 4편이었다.
습작과정의 수련과 각고가 고루 느껴지는 작품들이면서도 `합장'과 `사막을 걷다'는 구성의 치밀성이 떨어진다. 골프장 캐디의 사랑과 일상을 그리고 있는 ‘양파'는 유려한 문장이나 이미지의 섬세한 배치에 성공하고 있으면서도 주인공이 사랑을 회복하는 마지막 부분을 너무 안이하게 처리하고 있다.
짧은 TV유아프로그램의 주인공 `빠삐루파'의 안과 밖을 냉엄한 시선으로 그려나가고 있는 `빠삐루파 빠삐루파'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부터가 읽는 이를 괴롭힌다.
도식적인 구성이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문장이 여기에 가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응모작들이 범하고 있는 약점을 잘 극복하고 있다.
신체적 결손을 가진 사각지대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자의 냉엄하리만큼 차가운 시선, 흐트러짐 없이 주제를 조탁해 간 힘도 작품의 격조를 높여준다.
선 굵은 작품을 써내리라는 기대와 함께 작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오정희·한수산>
소설부문 당선소감
`열심히'라는 말밖에 기댈 곳이 없었다. 쓰는 일이 막막할 때마다 그 말에 매달렸다.
몇몇 사람들과 모여 얘기를 나누다보면 늘 결론은 그 말로 마무리되곤 했다.
열심히 쓰자고 서로의 굽은 등을 토닥여주던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 생각해도 참 고왔다.
그때 느꼈던 온기만으로도 나는 아주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걸으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일은 소설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그런 내게 당선 소식은 오래 걷는 자에게 주어지는 잠깐의 휴식처럼 고맙고 또 고마운 것이다.
부은 다리를 매만지고 옷을 추스르며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내게서 멀리 있거나 혹은 가까이 있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당선소식을 안부처럼 전한다.
포기하지 말라던 아홉 살 난 내 아이와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었던 남편에게도 고맙다.
내 소설을 믿어주신 심사위원선생님들께는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분들께 앞으로 열심히 더더욱 열심히 쓰겠다고 약속드린다.
이제 다시 길을 걷는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어쨌든 가다보면 다다르니) <김애현>
■프로필
1965년 서울출생.
세종대 교육학과 同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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