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 박영근
낡은 흑백 필름 속 같은 곳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내가 보인다
한편의 詩를 쓰려면
몇밤을 불면으로 때우는 나를
바겐세일도 하지 못해
백화점 문턱도 넘지 못하는 나의 상품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베스띠 벨리 막 화장을 끝낸 마네킹의 얼굴도 보인다
TV 뉴스 속에선 한총련 아이들 최루탄처럼 구호를 터트리고
내 귀엔 환청처럼 들리고
대낮 뜨겁게 타오르던 해가
페퍼포그 연기 속에서 복면을 한다
꽃들이 일제히 모가지를 꺾고 파업을 했는가
부러진 뼈와 두개골 사이로 새파란
억새를 키우고 있는 공장 위로
기억이 모가지를 부러뜨린 채
하늘을 향해 굴뚝을 세우고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그래 가자
가자
저 유월의 싱싱한 은행나무들이
시뻘겋게 녹슨 고철덩이로 보일 때까지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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