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혁 作
가뭄이 몇달째 계속되자 면사무소에서는 부락별로 양수기를 지원하였다. 모내기철인데도 모를 내지 못한 논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죽산리에도 양수기 몇대가 들어왔다. 양수기는 즉시 동민들에게 분배되었고, 들판 여기저기에서는 지하수를 퍼 올리는 발동기 소리가 통통통통 울려퍼졌다.
월남댁은 양수기가 보급될 때만 해도 당장 모내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시들해졌다. 그때까지도 월남댁은 양수기가 자기 논배미 쪽만 늦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더니, 보름 동안 양수기만 애타게 기다리던 월남댁은, 그날에야 비로소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건곤감리도 순서가 있는 법이건만, 곤감을 건너뛴 양수기는 곧장 리로 내려갔던 것이다. 이른바 동네 유지들 논으로만 양수기가 옮겨다닌 것이다. 순간 월남댁의 가슴에 콰르릉 천둥 번개가 쳤다.
‘시상에 요로코롬 미련하까이. 고것을 인자사 눈치채다니.’
두 눈에 쌍불을 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물길을 잡으려고 온 들판을 헤매는 동안, 동네 유지들은 자기들끼리만 양수기를 도돌이했던 것이다. 월남댁은 삽을 팽개치며 논두렁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한참이나 자기 분에 못 이겨 운 것이다. 울다가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일어섰다.
‘이 똥물에 튀겨도 시언찮을 놈들. 내가 늬놈들을 그냥 놔둘 성싶으냐.’
월남댁은 흙탕물에 범벅이 된 물초로 고무신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서 들개 마냥 논두렁을 달렸다. 부릅뜬 눈과 앙다문 입술이 표독스럽기조차 하였다.
사납쟁이. 그것은 월남댁의 별명이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무지렁이 월남댁은 몸뚱아리가 전 재산이었다. 시댁에서 분가할 때 전답커녕 두칸짜리 집구석이 고작이었다. 순해 빠진 남편과 어린 자식들은 먼산 바라기나 한가지였다. 살림을 일으키자니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사는 일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던 것이다. 욕심 많고 고집 세고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는, 그래서 오기로 똘똘 뭉친 월남댁을 마을에서는 상종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살림살이가 어느새 삼십여마지기의 전답과 만여평의 갯벌로 불어났다. 하지만 월남댁의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 친척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며 명절이 무엇인지 농한기가 뭔지도 모른 채 일만 아는 미련퉁이로 여겼다.
“이 개잡놈들. 내가 몸맹한 사나그하고 산다고 느그덜이 무시를 해야. 걸리기만 해봐라, 암 늠이든 걸리기만 해 봐.”
월남댁은 무단한 들판에 욕을 퍼부으며 걸었다. 논틀밭틀을 걷다가도 바락바락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농로를 치달았다. 농로를 지나 신작로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자 곧장 이장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벌컥 열어 젖히며 마당으로 들어선 모양이 성난 살모사 같다.
“이장인지 개장인지 잔 나와 보씨요.”
카랑카랑한 목청이 우아한 한옥 지붕을 따르르 울린다.
“이장 있소 읎소?”
월남댁이 악에 바친 소리를 질러대자 방문이 스르륵 열리며 이장댁이 나온다.
“으짠 일이요, 월남댁이? 우리 집 양반은 들에 나가고 읎는디.”
“으디 들로 나갔소. 이장하고 담판 질 일이 있응께 언능 말 하씨요, 언능.”
“음매. 먼 일인지는 몰라도, 성질 잔 죽이고 말 하씨요. 원, 사람 잡어묵을 상을 해싼께, 무서워서 으디 옆에나 가겄소?”
“누가 네 년보고 오락했냐. 네 서방 으딨냐고 물었제.”
월남댁은 목구멍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아니 월남댁. 시방 믄 말을 그렇게 해부요. 아무리 배운 것 없는 아녀자라지만 해도 너무 하요. 잘못한 것이 있다 쳐도 우리 집 양반이고, 욕을 먹는다 쳐도 우리 집 양반이제, 뭇 땀시 나한테 성깔이요?”
“그래, 이 년아. 네 년 말 한 번 잘했다. 나는 배운 것 읎고 가진 것 읎는 무식한 년이라 쌍말밖에 모른다. 그래, 중핵교까장 댕겠다는 네 년은 을마나 유식허냐? 그릏게 유식한 년이라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가뭄에, 방구들 지고 앉아서 손톱 밑이나 소제하고 자빠졌냐? 그것이 유식한 짓거리냐?”
“훠매 시끄런 거. 귀창 떨어지겄네. 엥간히 잔 떠들고 가씨요. 우리 집 양반은 중학교 너머 염전에 있응께.”
이장댁은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꽝 닫았다.
“간살꾼 같은 놈. 놈은 모내기를 못해 환장인디, 양수기를 염전 밭으로 빼돌려?”
월남댁은 그제야 손에 든 고무신을 꿰신고 성난 부사리 마냥 씩씩거리며 염전으로 치달았다. 그 무렵 이장은 새로 나온 양수기를 염전 옆 나산양반 논으로 가져와 물을 뿜고 있었다.
“저기 저거, 월남댁 아녀? 저 싸납쟁이가 또 믄 일이당가.”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새파란 들녘에 시뻘건 불덩어리로 번져오는 월남댁의 모습을 보며 나산댁이 한숨을 눌렀다. 그 말에 나산양반도 고개를 들어 월남댁을 바라보았다.
“저 여팬네, 또 뭇이 못마땅해서 부랴사랴 오는겨? 꼭 전장터에 나가는 장비 맹키로.”
“보나마나 물쌈 하러 오는 것이겄제. 안 그래도 저 여팬네 꼴 보기 싫어서 부러 이쪽으로 와부렀는디. 흐흐흐.”
이장이 허우대 좋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빙충맞게 웃었다. 사실 이장은 월남댁의 그림자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물꼬싸움으로 이골이 난 것이다. 두 사람의 논은 위아래로 깍지낀 손가락처럼 붙어 있어서, 경지정리를 하기 전부터 물꼬싸움으로 혀가 다 닳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사사건건 톱고 따지는지, 마을의 대소사에서부터 면사무소의 일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추궁할 때면 뒷골이 다 멍멍해졌다. 한번 들은 말은 십년이 가도 잊지 않는 비상한 지닐총도 염장을 찌를 노릇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기이한 총기에 영판 덜미 잡히기 십상이었다. 밀양싸움이 따로 없었다. 더욱 알다가도 모를 일은, 경지 정리한 논들이 모눈종이처럼 네모 반듯하게 들어앉고 수로의 폭도 한층 넓어졌음에도 물꼬싸움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장은 한 번도 월남댁을 이겨보지 못했다.
경지 정리를 하기 전, 이장 논은 윗배미였고 아랫배미는 월남댁 논이었다. 이장은 자기 논의 물이 철철 넘칠 때까지 물꼬를 터주지 않았다. 주는 것 없이 미운 터였다. 월남댁도 이장의 심보를 아는지라 윗논의 물이 차건 말건 다짜고짜 물꼬를 터 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논들도 나란히 붙어 있었지만 유독 두 사람의 물꼬싸움만 심했다.
부흥양반이 이장을 맡기 전이다. 그날도 월남댁은 새벽같이 한보뜸으로 달려갔다. 물꼬를 보러간 것이다. 물꼬가 막힌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예전처럼 흙삽으로 막은 것이 아니라 말뚝을 박고 철망을 얽어서 옹벽을 쌓은 것이다. 부흥양반의 심술이었다. 분에 겨운 월남댁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뜯어서 물이 솔솔 들어가고 있는 부흥양반의 위쪽 물꼬를 척 막아버렸다. 어느 틈에 부흥양반이 나타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 이년. 으째서 놈의 물꼬에 손을 대냐, 이 년아.”
“그러는 니 놈은 뭇 땀시 놈의 물꼬를 막었냐, 이 놈아. 네 놈의 논둑은 금테라도 둘렀냐. 뭇 땀시 놈의 물꼬에 쇠그물을 치고 지랄염병이여, 이 놀부 같은 놈아.”
“이 년아. 애시당초 네 년이 먼저 내 물꼬를 텄제 내가 먼저 막었냐.”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꼭두새벽이었다. 두 사람은 삽자루를 움켜쥔 채 한동안 입씨름을 하였다. 마을 안에서 입으로 월남댁을 당할 자는 없었다. 힘으로도 월남댁을 당해낼 남자는 몇 되지 않았다. 월남댁은 키도 크려니와 기운도 항우장사였다. 게다가 사리가 분명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마을 사람들도 월남댁의 성품이 올곧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마을의 대소사에 관한 비리를 월남댁이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었고, 부당한 울력 동원이며 각종 행사 때마다 암암리에 차출되는 노동력에 대한 항의도 월남댁뿐이었다. 월남댁의 그런 소행에 항상 불만이던 이장과 마을 유지들은 어떻게든 골탕을 먹여 마을에서 추방할 궁리만 하였다.
마침내 참다못한 부흥양반이 어깨에 매고 있던 삽을 팽개치며 월남댁의 옷고름을 잡아당겼다. 말로는 도무지 해결이 날 성싶지 않은 터라 힘으로라도 눌러보자는 셈평이었다.
“네 이년, 어디 내 몽둥이 맛 좀 봐라.”
부흥양반은 단숨에 월남댁을 논바닥에 패대기치며 덥석 올라탔다. 월남댁의 배를 깔고 앉은 부흥양반의 얼굴에는 제법 음흉한 미소까지 번졌다. 부흥양반이 허리띠를 풀어버리자 월남댁은 금방이라도 욕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논두렁과 논두렁 사이에 넉장거리를 당했으니 남자의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월남댁은 볏가마니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성큼성큼 뛰는 장사였다. 엉겁결에 넘어지긴 하였지만 삽을 쥔 월남댁의 손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였다. 삽날을 모로 세운 채 휘두른 것이 부흥양반의 왼쪽 귀를 찢었다. 부흥양반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자 바닥에서 일어난 월남댁은 반쯤 벗겨진 이장의 바지며 윗도리를 홀라당 벗겨서 삽자루에 둘둘 말아들고 소리쳤다.
“꼴에 수캐라고 다리 들고 오줌 누냐? 아나, 니 뽕이다.”
팬티만 걸친 부흥양반은 피가 흥건한 귀를 움켜쥔 채 숨도 쉬지 못했다. 힘으로 월남댁을 잡으려다 도리어 망신만 당한 사람으로는 부흥양반 말고도, 정육점에서 돼지 도살을 헛것처럼 해치우던 갈동양반과 전답을 가장 많이 소유한 유 면장의 아들 유종일 그리고 살살이에 촉새인 이동호 등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월남댁을 말로나 힘으로나 잡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이십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누구라도 월남댁은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제쳐놓은 것이다.
“부흥양반, 나 잔 보씨요. 으째서 우리 논배미는 양수기를 안 주요. 정부서 엄연히 각 면마다 부락마다 공히 나눠준 양수기를, 으째서 우리 논배미만 안 주냔 말이요. 물이 있어사 모내기를 하던 말던 할 것이 아니요.”
“그래서 시방 나더러 으짜라고?”
“양수기를 내놔야 할 것이 아니요. 으뜬 논배미는 일주일썩이나 양수기가 돌아가고, 으뜬 논배미는 양수기 콧구녁도 귀경을 못했는디, 이장이 디아갔고 그른 식으로 일하먼 쓰겄소?”
“아, 그라먼 진작에 말하제, 으째서 인자사 그라요?”
“한보뜸으로 양수기를 옮긴다고 했고, 또 오늘 양수기 두 대가 더 나온다고 해서 가봤더니 개콧구녁도 읎습디다. 이장 감투를 썼으먼 맘보를 곱게 써야제, 나 밉다고 안벽 치고 밭벽 치먼 누가 모를 중 아요?”
“그래서 오늘 아칙에 댁엘 갔드니, 아저씨 혼자만 기시등만. 그래 나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이리로 온 것이제.”
“머시라, 시방 그것을 말이라고 하요. 우리 집 냥반이 뭇을 안다고, 그 사람한테 양해를 구해라우. 나한테 물어봐야제.”
“우찌 되얐건, 나사 월남양반 허락을 받고 왔응께, 그만 허씨오. 그라고 정 억울하먼 법으로 따지든지.”
법. 그랬다. 그들이 월남댁을 당해낼 재간이 없자 들고 나온 것이 법이었다. 못난 놈 잡아오라면 없는 놈 잡아오는 격으로 법은 확실히 그들의 편이었다. 월남댁은 법, 소리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날도 월남댁은 법의 모순을 한탄하였다.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곁눈질로 할끔할끔 월남댁의 눈치를 살피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다고 천하의 월남댁이 선선히 물러설 리 만무였다.
“내 논에 물 들어가기 전에, 당신 논에 물 한 방울만 들어간 년에는 살인날 줄 알어. 이 급살맞을 인간아.”
월남댁은 발길을 돌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가 올 기미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뜨거운 폭양만이 들판을 빈대떡으로 튀겨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 대엿새, 월남댁은 그날도 못자리에 앉아 웃자란 모순을 치다가 땅거미가 으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장이 낼부터는 양수기를 한보뜸으로 옮긴닥 하대.”
“썩은 말대가리 같은 놈. 하늘에 빗방울이 저릏게 송글송글하니 맺힌 께사 양수기를 준다고? 예라 이 천하에 숭악한 놈아.”
월남댁은 남편의 말이 시답잖아 수건으로 온몸을 사정없이 털었다. 아닌게 아니라 자정 무렵이 되자 천둥번개가 치면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손이 발이 되도록 뛰어다닌 월남댁이었지만 도무지 반갑지가 않았다. 참으로 무정하고 무심한 하늘이었다. 비가 올라치면 열흘 전에나 오던지 아예 오질 말던지 할 것이지, 탈진할 대로 탈진해서 가슴에 시커먼 굴뚝이 뚫린 이때, 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탄도 해보고 통곡도 해보지만 솜뭉치로 가슴 치는 격이었다. 좌우지간 모내기는 하고 볼 일이었다.
월남댁은 꼭두새벽에 시아주버니의 이앙기를 예약하고 논으로 달려갔다. 마침 이장도 논배미 끝에서 물꼬를 만지고 있었다. 이장은 스무 마지기 중 그곳 너마지기 한뙈기만 남겨놓은 상태였고, 월남댁은 서른 마지기 중에서 고작 십여마지기를 모내기한 실정이었다. 월남댁은 도끼눈으로 이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우산으로 이장을 휙 지워버렸다.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았다. 빗속에서의 모내기는 곤란하였다. 예전처럼 한 모 한 모 손으로 모내기하던 때와는 달리, 이앙기로 모내기 한 모는 개구리밥 마냥 곧잘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꼭, 죽은 뱀처럼 긴 띠를 이루며 떠돌았던 것이다. 맑은 날에도 논배미를 둘러보면 사름을 못한 모가 그처럼 떠있곤 했는데, 우중에 모내기를 할 양이면 불을 보듯 빤했다. 비는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멀리서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가 싶게 시숙이 경운기를 논머리에 세우며 월남댁을 손짓하였다.
“이 상태론 모내기가 곤란하겄는디. 모가 전부 떠불 것이랑께.”
“으째사 쓰겄소, 으째사. 모내기는 반도 못했는디, 모판의 모는 다 커 불고.”
“기다려 볼 밖에요.”
“천불 나서 못 살겄네. 참말로 못 살어.”
비는 바닷바람을 몰고 줄기차게 밀려왔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월남댁은 하는 수 없이 우중 모내기를 강행하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모내기를 끝냈건만 비는 그 후로도 사나흘을 더 내렸다.
집안에 들어서면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큰아들이 설치해준 기름보일러를 가동했지만, 방안에는 눅진한 누룩냄새며 습기만이 축축하게 퍼졌고, 헛간에는 파르스름한 이끼마저 돋아났다. 물 한방울 없이 볼썽사납던 하천은 하루가 다르게 수위를 높이더니, 하천둑의 허리를 넘고 십리 벌판을 물바다로 만든 채, 비바람이 불 때마다 휘이잉 말 우는 소리를 흉내내곤 하였다.
언뜻 공포마저 주는 무서운 태풍이었다. 감나무가 부러졌는가 싶으면 전봇대가 자빠져서 전기가 나가고 전화가 두절되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흙담이 무너지고 도로가 포락하고, 물바다를 이룬 하천에는 황소만한 돼지가 둥둥 떠내려갔다. 회관에서는 날마다 울력을 소집하는 방송이 나왔고 학생들은 오전수업만 하였다. 면직원들은 빗속을 헤치며 피해상황을 조사하러 다녔다. 월남댁은 둥둥 떠다니는 모를 바라보며 한탄에 젖었다. 차라리 논농사를 포기했으면 했지, 떼거리로 떠내려가는 모를 다시 심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슴이 멍게 속처럼 발칵 뒤집힐 때는 차라리 바다가 편했다. 심술을 부리듯 갯바닥이라도 긁다보면 울분이 가라앉았다. 월남댁은 썰물이 시작되는 꼭두새벽에 비옷차림으로 갯벌을 향했다. 머잖아 김발을 치자면 말뚝도 손봐야 할 일이었지만, 심사가 뒤집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갯가에 이르자 아직도 파먹어야 할 까마득히 넓은 갯바닥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허리띠를 조였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들판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물꼬싸움을 할 일도 없었고, 주야장창 벼포기만 매만져줄 일도 없었다. 짭짤한 바닷바람을 쏘이며 조개를 캐다보면 뒷산 너머 마을의 자잘한 사건들이 한낮 바람소리에 불과하였다.
‘봉알 값도 못하는 놈들, 그저 몸맹한 지집년 기를 못 죽여서 안달난 놈들.’
월남댁의 눈에는 마을 남자들이 한결같이 좁쌀이었다. 성에 차는 인간이 하나도 없었다. 은영이 애비가 기골도 장대한 미남자에 경우 또한 밝다고는 하나, 십여년 전, 하천둑 너머 보막이 공사 때 보니, 그 속내도 오십보 백보였다. 당시 보의 위치를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동민들은 은근히 자기네 논배미 근처에 보막이를 희망하였다. 그런데 결국엔 은영이네 논머리로 낙찰을 본 것이다. 몇 해 후, 은영이네는 이장자리를 물러나 지금까지 마을 어른 행세를 해오고 있는데, 월남댁이 실망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해 뽑지 않은 말뚝에는 굴 껍질이 쇠똥처럼 덕지덕지 붙은 채 새끼에 새끼를 쳤다. 그것들은 인기척이 나면 영판 살아있다는 양 쏴아 쏴아 파도소리를 내곤 하였다. 그 말뚝들은 초겨울까지 마냥 방치된 채 바닷물에 젖었다 말랐다 하며 쓸데없이 굴만 키울 것이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도회지로 떠나기 전에는 가장 먼저 뽑았던 말뚝이다. 의건모라곤 없는 남편과 둘이서 전답이며 개펄을 살피는 일은 너무 벅찼다. 월남댁은 그것들을 장만하기까지 쌀밥 한 술 떠본 역사가 없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미 품을 떠날 때까지도 자식들한테 쌀밥 한 술 먹여보지 못했다. 하물며 언감생심 돼지고기며 쇠고기라니.
추석이 닥쳐도 설날이 와도 과일커녕 생선 한토막 사는 일이 없었다. 오직 삼시세끼 까만 꽁보리밥이 전부였다. 꽁보리밥에 감자 두어개 얹은 것은 그나마 고왔고, 정미소에서 헐값에 가져온 싸라기 밥은 별미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은 군말 없이 잘도 먹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30년을 훌쩍 넘었다.
남들이 전답을 팔아 고향을 뜰 때도 월남댁은 근근히 모은 돈으로 논밭을 사고 갯바닥을 끌어안았다. 아직도 닷마지기 식근을 살 수 있는 돈을 농협에 비축해 두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월남댁한테 굽실굽실하는 유일한 경우가 바로 돈 빌리는 때였다. 돈놀이가 농협 이자보다 많은 것을 안 후론 자주 돈을 놓아 새끼를 쳤고, 더러 떼인 돈도 수월찮았으나 월남댁의 살림살이는 날마다 불어났다.
그러던 어느 해, 옆집 사는 군자댁이 집을 내놓자 당장 사들였다. 큰놈이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으니 어언 이십여년이 흐른 셈이다. 한 집 건너 살던 부흥양반과는 또 한 번 이웃이 되었다. 옆집을 사들이고 보니 집터가 한층 넓었다. 손바닥만한 대밭도 집을 더욱 빛나게 했다. 이상한 점은, 대밭이 시집왔을 때보다 터무니없이 작아진 느낌이었다. 큰시누이도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한 일이시 대밭이 으째서 조로코롬 작아졌을까, 했지만 별 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예전의 찌그러진 냄비처럼 궁상맞은 집에 비하면 연병장이었다.
집을 산 지 삼년째, 두 집을 쓸고 신축하였다. 한뼘 남짓한 대밭을 갈아엎고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올린 것이다. 독수리처럼, 양 날개를 좌악 펴고서 먼 산을 향해 여봐라, 호령하는 부흥양반 집이 늘 부러웠던 것이다. 월남댁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우람하게 건축하여 마을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하였다.
그런 월남댁이 조개를 캘 때면 자주 울었다. 월남댁이 우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납쟁이, 월남댁이 울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바쁘게 조개를 캐는 손등 위로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자꾸만 떨어졌다.
바닷바람이 뺨을 거칠게 스쳐갔다. 고개를 들고 보니 바닷물이 어느새 코앞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갯바닥 여기저기 흩어진 네 자루 남짓한 자루를 머리에 이고 손에 들며 맹장수술 받았을 때처럼 어칠비칠 바다를 빠져나왔다. 지루한 초여름의 장마가 끝나자 찌는 듯한 폭염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내린 비는 저수지며 하천을 철철철 넘쳐흘렀고 들판마다 산기슭마다 푸르다 못해 검은빛이 칼깃을 세웠다.
녹음이 무르익는 단옷날이면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렸다. 면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줄다리기였다. 14개 마을에서 20명씩 선발된 정예선수들이 토너먼트로 경기를 하여, 우승한 마을에는 우승기와 송아지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죽산리는 월남댁이 시집온 이래 거의 우승을 도맡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죽산리는 준준결승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슬기로운 나산댁이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바로 월남댁이었다. 월남댁이 선수로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에 따라 우승의 향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년간, 이장을 비롯한 마을 유지들은 그들 식의 민주주의로 월남댁을 배척했다. 천성이 부지런한 데다 일밖에 모르는 아낙네라, 도리어 줄다리기에서 빠진 것을 좋아했을 월남댁을 나산댁이 찾아갔다. 월남댁이 시큰둥하자 이번에는 청년회장과 염전의 장 사장을 보내 설득하고, 그래도 고개를 외로 틀자 마침내 이장이 자존심을 누르며 찾아왔다.
“나가 딱 한 마디만 허겄소. 올 가슬 공판 때는 너나읎이 공평하게 출하를 허겄다고 약조를 허씨요. 예전처럼 당신네 그 잘난 인간들끼리만 공판 내지 말고, 막걸리 잔이나 멕이고설나무네 당신들끼리만 일등을 갈라 묵지 말고, 내 것도 일등을 주씨요. 우리 나락이, 그래도 나가 볼 때는 상품인디, 으째서 맨날 이등 아니면 삼등이냔 말이요.”
“우리가 은제 그랬당가.”
“그라먼 난 안 나가요. 지집년 주제에, 뭇이 좋다고 넘 남정네들 등쌀에 끼어서 줄다리기를 다 헌다요. 차라리 깨댕이 홀딱 벗고 춤추고 말제.”
월남댁은 이장을 쳐다보지도 않고 작두로 여물만 썰었다.
“훠매, 이장님도 참. 아, 여그까장 오셨으먼 속 시원하게 약조를 해 부씨요.”
나산댁이 눈을 깜짝이면서 이장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그럽시다. 그라먼 금년 농사는 전부 일등을 맞히기로, 내가 책음을 지겄소. 디얐소?”
“당신들 전부 들었지라이. 남자가 한입 갖고 두 말 하먼 봉알을 띠부러야 쓰요.”
그렇게 해서 월남댁은 단옷날 아침, 새끼줄로 고무신을 두번 세번 고팽이하여 미끄러지지 않게 하고, 손에는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덧끼고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쩌그 오요, 쩌그 와. 우리덜 두몫 허는 여팬네 쩌그 와.”
“가관이구랴. 농사만 짓는 여팬네가 으띃게 저른 생각을 다 허냔 말여.”
“그랑께 말이시. 아닌 말로 그나마 월남양반이나 됭께 살제, 우리 같은 놈덜은 자존심 상해서도 못 살어.”
당차고 오기 많고 욕심 많은 월남댁은 그날 줄다리기에서 기어이 우승을 되찾고야 말았다. 우승 기념으로 동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신바람 나는 술판을 벌일 때, 월남댁은 곧장 들로 나갔다. 또다시 가뭄이 시작된 것이다. 모를 일찍 낸 논들은 벌써 배동바지가 시작됐지만, 늦모를 낸 월남댁 논은 아직도 시퍼런 고개로 사래질만 하였다.
물은 벌써 고갈될 조짐이었고 논바닥은 시루밑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한달여 남짓, 밤낮으로 양수기를 돌렸으나 물은 턱없이 모자랐다. 구월로 접어들면서 다른 집들은 갯바닥에 말뚝을 세우고 김발을 맸지만, 월남댁은 홀로 논물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썩을 것들. 태풍이나 휘몰아쳐 부러라. 이 웬수 같은 놈들아. 느그들 나락은 놀짱놀짱허니 익어간께 좋아서들 짐발이나 매고 있고, 나는 여그서 나락폭 보듬고 있응께 속들이 씨원허냐. 이 징상스런 것들아.”
한에 받혀 바락바락 악을 쓰며 양수기에 매달려 하루해를 다 보냈다. 마침내 월남댁의 벼들도 물알이 들기 시작하였다. 희고도 뾰족한 것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흔드는 양이 마치 유치원생들의 손사래 마냥 살갑다. 월남댁은 수암산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예말이요. 우리도 낼부텀은 말뚝이나 박읍시다.”
“믄 소리여. 아까 뉴스 봉께로 태풍주의보락 하등만. 죽을라먼 믄 짓을 못혀?”
“뭇이라우. 아니 그라먼 시상에, 우리는 은제 말뚝 박고 은제 짐발 매고 은제 포자 붙인다요. 시상에 하늘도 무심허시제. 이 년이 믄 죄가 그리 많다고. 우모메 나는 나는 못 살어. 이 노릇을 으째사 쓰까.”
월남댁은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안쳐 놓고도 신세타령을 한참이나 하였다. 대차나 문명한 남편 말마따나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거짓말처럼 바닷바람이 밀려오더니, 지붕 위로 간당간당하게 매달린 안테나가 해바라기처럼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감나무가 휘청휘청 하면서 커다란 감들을 두두둑 쏟아냈다. 월남댁이 심란한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접니다. 엄니.”
“우모메, 내 새끼 복만이냐. 전화비 많이 나온디, 뭇 할라고 전화를 다 했냐?”
“엄니. 그란 것이 아니고라이, 테레비를 봉께, 하도 큰 태풍이 몰려온닥 해서.”
큰아들 복만이는 월남댁의 신앙과도 같았다. 어려서부터 말썽 한번 부린 적 없는 아들이었기에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 아들놈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취직하더니, 넷이나 되는 형제들을 고구마 줄기마냥 전부 끌어올렸다. 그러면서도 월급 한 푼 축내지 않고 애미한테 보낼 때면 눈시울이 먼저 뜨거워졌다.
“안즉은 몰것다. 시상에, 그것이 꺽정 디아갔고 전화했냐.”
“야. 그라고 엄니, 혹시 우리 집 대지 팽수가 을만지 아요?”
“늑 엄니, 일자 무식인 거 모르냐? 내가 그른 것을 으띃게 안다냐. 알먼 너나 알제.”
“엄니. 그라먼이라이, 은제 군청 가갔고 지적도 한 통만 떼 놓씨요.”
“뭇이라고 했냐, 시방?”
“핫따아, 엄니도 참. 지 적 도. 지적도라고 있는디, 우리 집 팽수가 적힌 문서제.”
“잉, 그래이. 그란디 거시기 저 뭇이냐. 지, 지?”
월남댁이 지, 지 하는 꼴을 보다못한 월남양반이 수화기를 가로챘다.
“워매, 갑갑한 거. 아, 이리 주소. 아부지다. 지적도는 뭇 할라고 그라냐?”
“아부지요. 다른 것이 아니고라이, 이번에 선 본 가스나그 안 있소?”
“이, 그란디.”
“그란디 고것이 저한테 이라요. 자기 집 팽수가 멫 팽인지도 모름시로, 아파트 이십평이 으짜고 삼십평이 으짜고 한담시롱 뿌담시 무안을 안 주요.”
월남댁이 아들 말을 곰삭이다 보니 독사처럼 대가리를 쳐든 것이 바로 대밭이었다. 월남댁이 시집 올 당시만 해도, 대밭은 분명히 군자댁 마당에 있었다. 대문을 열다 보면 대나무 때문에 문이 잘 안 열렸던 것이고, 당시 이장네 대문은 반대쪽에 있었다. 그 대문이 언제부턴가 대밭 쪽으로 옮겨오고 대숲도 예전보다 훨씬 작아진 것이다. 이사 온 지 이십여년이 지나도록 그것을 감쪽같이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이튿날 아침, 월남댁은 열일을 젖혀두고 군청으로 갔다. 가서, 남편이 써준 쪽지를 내밀며 지적도와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을 신청했다. 물론 남편의 말대로 2부를 떼서, 1부는 보관하고 1부는 아들한테 보냈다.
태풍은 연 사흘 동안 자갈 같은 빗방울을 뿌리며 지나갔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갯벌에 박았던 말뚝들은 절반 나마 부러지거나 뽑혔고, 갈가리 찢어진 그물은 모래톱에 혀를 묻었다. 일찍 고개를 숙인 벼들은 허리가 부러진 채 논바닥에 머리를 처박고선 주인이 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늦모를 낸 월남댁의 벼는 거짓말처럼 말짱한 것이, 청솔가지보다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선 새파란 하늘을 향해 어험, 하는 것이었다.
아들 복만이가 서울에서 내려온 것은 며칠 후였다. 복만이는 그날로 측량사 친구를 불러 집터를 측량하였다. 측량을 하다 보니 월남댁의 의문처럼 이장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지적도대로라면, 담장을 기준으로 해서 이장댁 마당 절반이 느그 땅이다. 그라고 대문 밖의 저 미나리꽝이며 텃밭도 전부 느그 것이여.”
“무시 으짜고 으째야?”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었다. 월남댁 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월남양반마저도 기가 막혔다. 문제는 그 이장이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자신들을 괄시해 왔다는 것이다. 이장이 논두렁까지 깎아내며 논 평수를 늘리던 심보는 온 동네가 아는 터라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집터까지 야금야금 파고들었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월남댁의 뇌리에 비수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버업? 법 좋아하시네. 네 놈들이 법 법 할 때부터 알아봤다. 이 징상스런 것들아. 느그들이 그 놈의 법으로 걸핏하먼 나를 죽일라고 발싸심을 해쌌등만. 오냐, 이 놈들아. 법 맛 한 번 오살나게 처묵어봐라.’
월남댁은 소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장에라도 쳐들어갈 기세였다. 복만이도 어머니 못지 않았다. 그동안 동네사람들의 모욕을 받으며 살아온 일이며 이유 없이 따돌림당한 기억들이 한꺼번에 머리를 폭발시켜 버렸다.
“엄니. 이 참에 아파트 내놓고 붙어 붑시다. 이랄 때 울 엄니 한 풀어드리제, 지가 믄 재주로 엄니 한을 풀어주겄소.”
모자는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측량사 친구가 두 사람을 만류하였다.
“복만아, 내 말 잔 들어봐야. 촌에서 살다보먼 이른 일도 있고 저른 일도 있응게, 너무 흥분하지 말고 다시 생각해 봐. 무서운 것이 법인디, 멋상 모르고 법 법 하지 말고, 변호사라도 찾아가서 신중하게 상의해라. 그렇더라도 재판은 피하는 것이 좋아야. 까딱하먼 두집 다 망한께.”
“아녀. 이번에 약혼한 가스나 오빠가 검사여. 나도 울 엄니만큼 무식한디,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정도는 알어야. 너도 알다시피 울 엄니가 믄 죄냐. 전부 즈그들이 농탕질을 부렸제.”
그리하여 모자가 이장댁으로 쳐들어갔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이장은 도리어 쌍심지를 켰다. 월남댁은 이장이 즐겨 쓰던 ‘법대로’란 말만 남기고 나왔다. 이장은 자신의 잘못을 아는 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천지사방을 뛰어다녔다. 승산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을 유지들을 월남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보씨요 월남댁. 한 동리서 얼굴 맞대고 삼시로 그라먼 쓰겄소? 구장 체면을 봐서라도 눈 감어 줍시다. 아, 동네 궂은 일은 혼자 다 하고 댕기는 양반인디, 이른 일까장 까발려서 구장 얼굴에 먹칠하먼 쓰겄소?”
“아, 그냥도 줄란지거나 지적도 한장 갖고 너무 그라먼 벌받제. 아무리 아녀자 소견머리라지만 안 그라요? 인심 한 번 팍 써 부씨요.”
“나가 이 참에 조사를 해 봉께로 동네다가 푼 돈이 이천도 넘등만. 되려 조신할 사람은 월남댁이 아녀?”
월남댁이 바라는 것은 딱 한 마디였다. ‘그동안 우리들 행짜가 잘못 되얐소. 앞으로는 시정하리다.’ 하지만 동네 유지라는 것들이 죄다 다녀갔지만 그런 말을 한 놈은 눈 씻고 봐도 없었다. 진갑을 넘은 그날까지 옷 한벌 사 입은 적이 없다. 여자답게 화장품 한번 발라본 적도 없다. 쌀밥에 고깃점 얹은 것은 고작 십년 안팎이다. 그 세월이라니. 그 세월을 살아오며 당한 설움이라니. 보다 못한 큰시누이가 월남댁을 찾아왔다.
“동상의 댁이 한발 물러나소. 나가 자네 속을 으째 몰겄는가. 자네같이 똑똑한 사램이, 으짜다가 저리 못난 내 동상을 만나 그 서런 세월을 보낼 적에 동상댁 맴이 오죽 했겄는가. 다 우리 집안 잘못이제 동상댁 탓이 아니네. 저 못난 것들 탓이 아녀.”
“성님, 성님. 지가 오죽이나 분하고 원통하먼 이라겄소. 내 사나그 몸맹하다고 깔보고 천대한 것이 을마나 분하고 억울하먼 이라겄냔 말이요.”
“으짜네 으짜네 해도, 자네 같은 사램이 으디 있당가.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닥 안 하등가. 저 논바닥의 나락들 잔 보소. 자네한테 해코지하려든 무지랭이들 나락들 잔 봐. 말뚝은 또 으짜고 짐발을 또 으짜든가. 참는 것이 어른이고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어른이제. 같이 하지 말게나, 같이 하지 마. 그만 잊어 불고 살세. 동상의 댁.”
그때까지도 월남댁은 차마 법대로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추석이 되자 도회지로 나간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장은 근동에서 가장 출세했다는 박면장의 아들을 찾아가 통사정을 하였다. 그러자 박면장의 아들이 친구들을 앞세우고 월남댁을 찾아왔다.
“아짐이 법대로 한다고 해붔소? 그람 누가 이긴가 으디 한번 해 봅시다. 요새 시상에 법이라는 것이 으디 정의의 편인 줄 아시오? 법도 심이 있어사 이기는 시상이여라우. 평생을 땅만 파묵고 산 사람이 알 턱이 없겠지만 말이오.”
“이 간살 밑구녘 같은 놈아. 네깐 놈이 뭇이간디, 놈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여. 이 호로잡놈아. 차마 인생이 불쌍해서 송사만큼은 미뤄왔는디, 뭇이 으짜고 으째야? 법도 심이 있어사 쓴다고야? 오냐 그래 이 썩어 문드러질 놈아. 으디 그 잘난 법으로 한 번 엥겨 봐라, 엥겨 봐. 내일 당장, 내 동생 앞으로 명의이전 할 것잉께. 오장육부에 불을 질러도 분수가 있고 뭇방치기도 경우가 있지, 시상에 이랄 수가 있냐? 이랄 수가 있어?”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말대로 땅을 찾으면 마을에 기부라도 할 생각이었다. 마을 앞을 지나다 보면 코딱지만한 회관을 먼저 보는 것인데, 동네 어른들이 쉬는 그 회관이 부끄럽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양보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당장 동생 앞으로 명의이전을 해버렸다. 동생이 이튿날로 이장을 찾아갔다.
“사흘 말미를 드리겄소. 그 안에 자진해서 헛간이며 엔담을 철거하시오. 그리고 저 미나리며 배추도 다 뽑으씨요. 안 그람 불도저로 확 밀어불팅께.”
굴때장군 같은 장정들을 앞세운 땅 주인 앞에서 이장은 비로소 한숨을 토했다. 명의변경은 상상도 못했다. 밤새 베개를 보듬고 뒹굴었지만 묘안이 없었다. 헛간이나 텃밭 문제가 아니었다. 안채가 반 토막날 판국이었다. 약속한 날이 되도록 이장은 헛간커녕 담장도 허물지 못했다. 나흗날 아침이 되자, 쿠르릉 탱크 구르는 소리와 함께 포클레인 한 대가 회관 앞을 굴러오고 있었다. 이장은 그제야 월남댁을 찾아갔다. 하지만 월남댁은 집에 없었다. 그 사이 온 동민들이 불구경이라도 난 양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비켜요, 비켜. 아, 다들 물러서라니까요.”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 옆에는 월남댁이 저승사자처럼 앉아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쑤군거렸다. 저 작것이 시방 믄 짓거리여? 지가 은제 코끼리를 몰아봤다고 떡 하니 운전대를 잡냔 말여. 집 문서까장 동상한테 넘겼담시롱.
그때 월남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좌중을 한 번 훑어본 다음, 예의 그 사납쟁이 어투로 일갈하였다.
“당신들 소원대로 나가 이 동리를 뜨겄소. 인자 나는 우리 아들한티 가서 살랑께, 잘난 당신네들끼리 천년만년 사시씨요. 허지만 이 말만은 꼭 해사 쓰겄소. 이 징상스런 것들아. 만절필동도 모르는 것들아. 느그들이 그라고도 인두겁을 쓴 사람이냐? 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자면 저 하늘을 갈가리 찢어발겨도 시언찮을 판에, 저 집구석을 그냥 놔둘 성싶냐?”
울고 있는 것인가, 천하의 월남댁이? 어금니를 악문 월남댁의 손이 운전대로 향하자, 포클레인이 서서히 이장 집 헛간을 향해 굴렀다.
“스톱. 스톱스톱.”
이장이 포클레인 앞으로 불쑥 뛰어들었다. 놀란 운전기사가 급정거를 하였다. 월남댁이 고개를 쑥 뽑더니 운전대 앞을 내다보았다. 이장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어눌하게 중얼거렸다.
“하 하 합의 합의합시다, 합의.”
“크게 말하씨요, 크게. 이 호랑말코 같은 인간아.”
월남댁이 바락바락 악을 쓰며 땅 위로 내려서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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