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번 6월엔 현충원을 한번 걸어봅시다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기에 몸은 부서져
가루가 되고 그대 흘린 피 이 땅 적셔 흐르리
통일 꿈 이뤄져 평양 가는 첫 기차
기적 울릴 때 무덤 헤쳐 일어나소서
순국선열 무명용사 묘비 앞에 서면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주말이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산책로를 즐겨 찾는다. 현충원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책로는 좌우로 거리가 무려 8㎞에 이르는, 쾌적한 숲 속의 공기 맑은 오솔길이다. 서울에 오랫동안 살아온 시민 가운데도 현충원 안에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현충원은 국가유공자들이 묻힌 곳 또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 외교사절이나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꼭 거쳐 가는 필수 코스 정도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초여름에는 향기 그윽한 라일락과 우윳빛 꽃이 아름다운 아카시아 나무들이 한창이다.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아래 서면 은은한 꽃향기가 온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어느새 마음도 편안해진다.
내가 현충원의 산책로를 자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산책길을 걸으며 자연스레 전직 대통령이나 군(軍) 장성, 무명용사와 경찰 등 국가유공자들의 묘역을 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묘소를 참배하며 묘비에 새겨진 추도문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지고 애틋함이 치밀어오른다. 조국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비문 가운데 모윤숙 시인이 쓴 고(故) 육영수 여사의 묘비 글은 수려하면서도 장엄하게 느껴진다.
'당신의 장미는 아직 시들지 않았고 뽕을 따서 담으시던 광우리는 거기 있는데…. 홀연 8월의 태양과 함께 먹구름에 숨어버리신 날 우린 한목소리 되어 당신을 불렀습니다. 비옵니다. 꽃보라도 날리신 영이시여! 저 먼, 신의 강가에 흰새로 날으시어 수호하소서, 이 조국 이 겨레를.'
비문을 읽으면 마치 고인의 살아생전의 체취가 되살아나는 듯 느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듯 슬픔이 밀려온다.
바쁜 일상에 치이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때로는 힘들고 가슴이 답답한 날, 산책로를 걸으며 찬찬히 비문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삶에 대한 숭고함과 나라에 대한 나름의 사명감이 살아난다.
한솔 이효상씨가 쓴 고 이인호 해병소령의 추모 글은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기에 청춘도 정든 임도 모두 버리고 그대 몸은 부서져 가루가 되고 피는 흘러 이슬이 되었거니 그대 흘린 피! 이 땅 적시어 생명되어 흐르리.'
남편이나 자식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아내와 어머니들이 쓴 무명용사들의 비문에도 절절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묻어나온다.
'잘 다녀올 테니 아이들 잘 보살피고 몸조심 하라시며 우리 세 식구 남겨둔 채 입대하시던 당신 모습, 조국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장하신 당신 명복을 빕니다.' '너의 착하던 그 모습이 한 줌의 재로 돌아오다니.'
1983년 10월 북한의 미얀마 랑군 테러로 희생된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순국 외교사절의 묘역에 들어서면 이역만리 먼 곳에서 국가 동량재를 잃은 안타까움과 분노가 솟구친다.
'살아서는 향기를 멀리멀리 풍기고 맑음을 날로날로 더해가던 그대…. 그대는 총명했기에 그대가 아쉽고…'라며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쓴 김재익 경제수석 묘비 글은 가슴을 치게 한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고향 선배인 이범석 외무부 장관에게 바친 묘비 글에선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어느 날 통일의 큰 꿈 이뤄져 평양 가는 첫 기차 서울 떠나는 기적소리 울릴 때 임이여 무덤 헤치고 일어나소서.'
굳이 누가 일깨워주지 않아도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야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말없이 산화(散華)해간 수많은 호국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묘비를 한자 한자 읽으면서 문득 천안함 장병들의 죽음이 떠올라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들도 생전에 누구보다 소중한 부모의 자식이었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이었으며 귀여운 자식들의 아버지였다. 그러기에 이 땅에 살아남은 우리들은 그들의 죽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70% 이상은 6·25를 겪지 않은 세대로 전쟁의 참상을 잘 모른다. 안보(安保)라는 것이 공기 속의 산소처럼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젊은 세대들이 "북한보다 미국을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국립현충원 안에 안보 박물관이 있으면 좋을 듯하다.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나라,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해 둬야 한다. 그들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죽었는지를 후세가 널리 기억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현충원의 순국선열 묘비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생생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아카시아 향기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번 6월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현충원 산책로를 한번 걸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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