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내 고향집에 가네 / 김현주

시인 최주식 2010. 6. 15. 23:07

내 고향집에 가네 / 김현주

 

희미한 인기척에도 고샅까지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소루쟁이 아기똥풀 쇠비름

강아지풀들이 어깨 들썩이며 달려 나오는 고향집,

짙푸른 대숲 너머 창백하게 내려앉는 먹구름은

폐병쟁이 젊은 아재가 마늘 구워 먹던 사랑채에

한참을 머무르고 핏빛 노을 속, 그을음이 까맣게

내려앉는 옹색한 부엌에서 타닥타닥,

솔가지 타는 소리가 매워 술래처럼

몰래 들어가 낮게 흐느끼던 숙모가

삭정이를 부러뜨려 슬픔을 삭히던 곳

싸리문을 살짝 밀치면

발꿈치를 들고 종종종 달려 나오는 풀각시처럼

천방지축 동갑내기 조카들을 마중나오던

어린 숙모가 희미한 30촉 백열전구 밑에서

졸음에 겨워 눈꺼풀을 쓸어내리면

뒷산 그림자까지 다 내려와

한 이불 덮고 코를 골던 곳

가슴을 펼치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내 소꿉친구, 숙모님의 부음을 듣고

고향집에 가는 날

 

 

시집 <페르시안 석류> 2010. 문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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