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컵의 안간힘 / 허영숙
마디는 뿌리의 안간힘이다
대를 잘라내고 남은 미나리 뿌리를 컵에 담아두었더니 여린 대가 새로 올라온다 한 컵의 물에 뿌리를 두고 안간힘을 다해 잘려나간 마디를 파랗게 세우고 있다
컵의 물을 숫돌에 뿌려가며 한 손으로 칼을 갈고 있는 남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가 뭉툭한 몸뚱이만 남은 나머지 한 손으로 칼등을 단단하게 누른다 남자에게 있어 손은 밥이다 밥이면서 잘려나간 뼈대다 안간힘을 실어 버텨야 하는
하루다 날 선 것들의 중심을 잡기 위해 손등의 힘줄을 다시 세운다 잘려나간 뼈들이 허공 한 채를 단단하게 동여매고 있다
<다시올문학> 201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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