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거미와 달 / 권혁수

시인 최주식 2010. 8. 9. 22:11

거미와 달 / 권혁수

 

듣자니, 거미란 놈이 거리의 나뭇가지에다

미니홈페이지를 개설했다는군요

 

손님을 기다리시는 모양인데

 

하루 종일 푸른 하늘을 배경화면으로 깔고

구름과 시원한 비바람을 실시간으로 서비스해도

파리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네요

 

아무래도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나

흘러간 팝송 같은 개울 물소리라도

메뉴판에 더 얹어놔야 할까봅니다

 

목이 길어 목마른 밤

 

달덩이 하나 덜렁 거미줄에 걸리자

허기진 녀석이 졸다 말고 덥석

마른 이빨로 꽉, 깨물었네요 정신없이

엄마 젖 빨듯 달빛을 빨아대네요

 

저런!

하루하루 쭈그러드는 달이 안쓰럽네요

오는 그믐밤엔 당신

거미줄에 걸리는 꿈을 꾸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거든, 복권 사세요

행운이라도 혹은 불운이어도

걸리는 건 어차피 운이 아니던가요

 

시집 <빵나무아래>2010. 천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