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휴일, 붉은 혹은 검은 / 최광임

시인 최주식 2010. 8. 9. 22:10

휴일, 붉은 혹은 검은 / 최광임

 

며칠째 휴일인데요

떨이도 되지 않는 두어 물 간 생선 같은 날들이네요

궁둥이를 이고 걷는 할머니의 어물전

손가락만 닿아도 살점 문드러지는 물고기들 같아요

희멀겋게 백태 낀 물고기 눈에 잠긴 바다나 떠올리는

나도 며칠째 팔리지 않는 할머니의 생선이네요

한 번은 오들오들 울다 먹오디처럼 잠들었고요

하루는 대청마루에 앉아 산허리를 치켜세우는 구름을 보았는데요

구름이 자꾸 부연해지면 바람의 소리만 사나워지네요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난청이기 때문일까요

주인 잃은 소리는 갈비뼈 사이 그물을 치고

세상 밖의 파도란 파도 죄다 불러 앉히곤 하네요

적요에 익숙지 못한 심장이 용마루에 앉았다 대숲으로 뛰어내려요

파리 한 마리 날지 않는 어물전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죽창 같은 무서움의 뼈들 몸 뚫고 자라 내 숨을 찌른 탓인데요

개에게 물린 어둠이 팽팽해질수록

한 움큼 쏟아지는 왕소금에 속수무책으로 팔딱이던 활어를 떠올려요

어둠에 익숙지 못한 것은 전등 뒤를 걱정하는 것일 텐데요

부나비도 한 번쯤은 자신의 등을 보았을까요

짊어진 짐도 없이 근심만 태산인 것들

뻐꾸기가 동쪽에서부터 어둠을 쪼아 오네요

그러니 저 소리도 여직껏 노래가 아니라 구업(口業)이었던 걸까요

 

백태 낀 눈에서 짭짤한 바다 둥실 떠오른다 해도

어쩌죠, 익숙해지는 이 어둠은

 

「시산맥」2010년 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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