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육친/ 손택수

시인 최주식 2010. 8. 9. 22:09

육친/ 손택수

 

책장에 침을 묻히는 건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

막 달인 간장 맛이라도 보듯

눌러 찍은 손가락을 혀에 갖다 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곤 하지

세상엔 체액을 활자 위에 묻히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혀의 동의 없이는 도무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연필심에 침을 묻혀 글을 쓰던 버릇도 버릇이지만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종이 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어머니 침이 묻어 있네

어린 날 오도독오도독 씹은 생선뼈와 함께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그 침

페이지 페이지 얼룩이 되어 있네

 

 - 『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