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죽선 / 허영숙

시인 최주식 2010. 9. 21. 18:49

죽선 / 허영숙

 

속없어 보여도 저미면 뼈가 여럿입니다

뼈와 뼈를 선지(扇紙)로 묶으면 서늘한 숲이 생기지요

한여름의 폭염

그 후방에 나 앉아 포개진 댓살을 펼쳐 흔들면

숲에서 찬바람이 일제히 몰려오는 것인데

그럼 바람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지

허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요한 듯 보여도 수많은 바람이 살고 있지요

댓살을 흔들 때 흩어지거나 포개지면서

대 안에 숨은 서늘한 그늘을 베껴내며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인데

댓살이 차고 시원한 바람을 몰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고비를 넘을 때마다

마디 속에 생긴 그늘 때문이지요

마디는 다시 한 생애를 밀어올리고

곧은 생애에 또 한 마디가 자라나고

그늘은 그때 생겨나 댓살에 스미지요

밀려나면 또 다시 몰아오고

빙글빙글 바람을 돌리는 댓살 속에

고비도 없이 한 시절 그럭저럭 고요하게 건너가는

나의 지루한 문양을 그려 넣으면

바람을 접고 또 접어 내 어깨를 후려쳐 줄까요

 

<시와시학> 2010년 가을호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돔 전쟁 / 손택수  (0) 2010.09.21
구름의 노래 / 유장균   (0) 2010.09.21
아르바이트 소녀 / 박후기   (0) 2010.09.21
다시 분꽃은 피고 / 하명환  (0) 2010.09.21
소리의 거처 / 조용미   (0)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