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분꽃은 피고 / 하명환
앞마당 분꽃들은 감나무 까치밥 몰골이 됐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아버지에게 분꽃타령을 앙칼지게 해댔다
나는 매년 그런 아버지 행동이 어이없어 캐묻고 싶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불호령만 머릴 맴돌아 꾹 참았다
크고 작은 일곱 행성의 태양에게 뒤꼍 해바라기만 고개를 돌리던 시월
무성한 분꽃 이파리들이 머리채 뜯겨나가듯 버려졌다
아버지의 눈높이만큼 자란 내가 퉁명스레 물었다
아버지 왜 이파릴 다 뜯어버렸어요?
질끈 담배꽁초를 물고 잎을 쓸다 힐끗 쳐다보던 무심한 눈빛
가물가물 담뱃불보다 더 밝게 타는 빛이었다
막둥아 나 죽거든 무덤가에 분꽃을 심어주렴 하던 엄니
서울근교 공원묘지, 오른편 아버지 쪽은 해마다 전멸
왼편 어머니 분꽃은 수줍게 만발
어머니의 분 냄새가 무덤가에 달빛처럼 쏟아진다
분꽃 씨를 받으며 지금도 아버지께 묻고 싶다
다 큰 나무처럼 앙상한 분꽃
이파리 없는 분꽃들이 왜 그리 속 시원하게 보이는지
나도 때론 아버지 같은 눈빛을 왜 보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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