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수수밭/천 양 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이
몸 속에 들어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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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1942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1996년 소월시문학상을, 1998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
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등이 있고,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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