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 빚./ 윤인자
이른 새벽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동백기름 발라
참빗으로 머리 빗다가
우리 남매 등록금 고지서 보며
한숨 쉬는 아버지를 슬며시 돌아보는 어머니
어두운 불빛에도
대낮의 환한 빛 아래서
그림 색칠하는 붓처럼
곱게 빗질하던 어머니 손길 멈춘다
깨알처럼 써진 가계부 숫자
하나하나 빗으로 읽어 내려가다
끝장을 넘기신 어머니
입가의 미소 띄우며
빗질을 계속 하시며 혼잣말 한다
7남매 건강 하것다
우리 부부 건강 하것다
뭔 걱정이까
가을 수확 후 갚으면 되제
허-헛!
기침하시며 마루로 나가시는 아버지
방문을 닫고
소리 없이 큰 숨 내쉬던 어머니
기름을 다시 바르고 윤을 낸다
그 때는
그래도
빚이 빗결따라 윤이 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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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자 시인의 시는 연륜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으며, 휘황찬란한 수사나 난해한 비유가 없어도 가슴을 울린다. <이른 새벽/희미한 백열등 아래서/동백기름 발라/참빗으로 머리 빗다가/우리 남매 등록금 고지서 보며/한숨 쉬는 아버지를 슬며시 돌아보는 어머니>에서 윤인자 시인은 깊은 시어의 첩첩산골을 헤매며 어머니의 사랑에 얼마나 가슴 태우고 울었을까? 이 가을의 만산홍엽이 어머니의 사랑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한 편의 시로 펼쳐보이는 어머니 사랑에 가슴 찡하다.
이 시의 4연 <7남매 건강 하것다/우리 부부 건강 하것다/뭔 걱정이까/가을 수확 후 갚으면 되제>와 같이 이 세상 어머니는 단순(?)하다. 그늘쪽에서 자신을 감추고 있다가도 비바람 눈보라 치면 가족을 향하여 섬광처럼 빛나는 햇살로 다가선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당신의 상처를 다스려 자식을 감싸안은 사랑꽃이 늘 피어난다. 어머니의 크신 사랑으로 가족들 가는 길마다 막힘이 없고 집안이 번창하게 하소서.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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