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스타킹 / 신현림
진흙눈이라도 퍼부울 듯이 하늘이 우울하다
유언장처럼 십이월은 우울하다
매년, 일년은 사서 금방 올이 나가는 스타킹이다
스타킹 끝을 잡은 당신은 쓸쓸해서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처럼 흐물흐물해질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탄광의 석탄처럼 쏟아져나온다
뭐 하나라도 움켜쥔 자의 저쪽,
으스대는 망년회 촛불들은 몽둥이만 같구나
하늘에게 빈 손을 내저으며 구원을 부르짖지만
여태 난 뭘했나? 대체 당신은 그렇게 살아도 되나?
무력감을 잊도록 위로하는 건 제대로 없다
흑맥주를 마시며 떠들어봤자, 전화질을 해봤자
공허감의 톱날은 가슴을 자르며 지나갈 것이다
잘 열리지도 않는 문을 계속 두드리는 사람들
소멸로 운반하는 전지전능한 절망감을 넘어
나의 당신, 돌고래처럼 튀어올라라
나의 당신, 사월 만발한 동백꽃처럼 용수철처럼
당신을 위로하는 내 눈이 글썽거리는구나
연말이 위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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