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시 같기도 하고 사진 같기도 한 내 인생 /신현림

시인 최주식 2011. 11. 10. 22:20

시 같기도 하고 사진 같기도 한 내 인생
                                           
                                                                             신현림


  날이 흐리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여행을 떠날 것이고, 환한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외로우면 손님처럼 바람이 불었고, 시들이 찾아왔다. 모처럼만에 쓸쓸하고 부드러운 시간에 읽는 시. 마음에 생기는 파동. 모든 벽이 날아가고 좋은 기운이 스며들게 천천히 감각을 열어둔다.
  바람이 잘 통하는 구석방에 앉아 좋은 시를 마음에 적시고 있으면 어째 이다지도 마음 편할까. 왠지 안심이 되고 힘들고 슬픈 일들이 다 녹는 기분이다. 비누거품처럼 뭉텅뭉텅 흘러가는 시간이 무섭지만 이렇게 시집을 읽고 열중하는 시간은 더없이 기쁘다.
 행복이 뭘까.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행복, 내게도 얼마나 열망하던 영원무궁한 이데올로기였던가.
 대학 때 미시마 유키오의 어느 소설에서  행복하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불안할까 라는 글을 읽고 무척 놀랐다. 행복해도 불안하다니. 원하는 걸 가지면 또 잃어버릴까 불안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갖고 싶어 몸부림치는 사람 마음. 해질녘 노을색 만큼이나 오묘한 것이다. 과연 만족이 있을까. 감사할 줄 안다면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때가 많다. 식욕과 성욕처럼 채워지는 순간 그뿐이듯이.
 나의 행복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결코 안정된 삶이 아니다.
 모험이 있고 발견이 있고 끊임없는 성찰과 깨달음이 있는 생생한 여행을 꿈꾼다.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듯, 사랑에 중독되어 있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거나, 사랑의 결핍으로 빈혈증을 호소한다.
 아, 비 냄새. 현기증이 난다. 아름다움에 취해도, 인생에 결핍이 많아도 현기증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하여 누구나 자신의 결핍된 면을 사랑이든 일로든 메우려고 하듯이 나도 일중독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글을 쓸 때만은 혼이 나간 것 같고, 적어도 그때만은 불행하지 않다.
 19살 때 위안과 용기를 주었던 글이 있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한 시대의 지성으로 서른에 요절한 수필가 전혜린, 그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나는 위의 글을 베껴 놓고, 인생을 격정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곤 하였다. 어찌 보면 내가 산다는 건 한 편의 시이며 한 권의 책이고, 그것으로 삶을 조금씩 바꿔가는 일이었으며 사랑의 능력을 키워가는 일이었다.
 사랑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속수무책일 때가 많은지. 사랑이 깊어지고 지순한 마음이 솟아나도 그것을 재대로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사랑할 수 있는 큰 능력을 배우는 것! 고난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인생이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지금도 시를 읽으며 사랑을 배운다. 사랑의 방법, 사랑의 능력을 키운다. 사랑
의 자리에서 잠시 머물다 눈을 맞거나 바람을 맞으며 빛나는 해를 그린다.
 인생이 재능을 찾는 여행이라고 했을 때 아마도 나는 시를 깊이 사랑하는 재능을 가졌나보다. 끌리는 시를 보면 친구들을 깜짝 놀래주고 싶고 감동을 주고 싶어 노트에 시를 베껴두곤 하였다. 그러다가 편지를 띄울 때마다 한 편씩 꺼내어 전달했다.
 자연스럽게 시의 리듬이라든가 시가 지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기운들이 몸에 가득 깃들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시를 퍼서 나르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계속 베껴둔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새겨 육체화를 시킨다는 것이다. 분명 한 편의 시는 천천히, 확실하게 내 몸과 마음을 이뤄갔다.
  시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정신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등불이었다. 라는 말을 나는 절감한다. 앞날이 캄캄할 만큼 슬프고 괴로울 때마다 한 편의 좋은 시들은 어두운 인생길을 따뜻이 비춰준 등불이었다. 특히 나의 긴 재수시절에 틈틈이 시에 기대어 살며 거듭된 실패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갔다. 그렇게 의지하듯이 읽었던 좋은 시들은 잉크가 물속에서 파랗게 번지듯 가슴에 스미어 푸른빛으로 오래 머물렀다.
 소설 <닥터 지바고>의 한 대목이다. 고쳐 쓰고 다시 쓰는 이유는 표현의 정확성과 힘을 찾아내기 위해서 라고  예술은 항상 아름다움을 섬기고, 아름다움이란 형상을 갖춘 기쁨이며, 형상은 유기적인 생명체의 열쇠이니 그것이 없으면 산 것은 하나도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비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작품은 존재의 기쁨을 표현한다.
 세상의 모든 시들을 통해 강렬하게 다가오는 삶의 순간을 맛보며 인생의 깊이와 넓이로 한없이 파들어가고 싶다. 열애의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내안의 상처와 슬픔을 씻어 내리며 시와 더불어 매일 다시 태어나고 싶다. 죽음과 하나가 될 만큼 뜨거운 사랑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