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강의 안쪽에서/전동균

시인 최주식 2012. 3. 29. 23:38

강의 안쪽에서

들오리 떼 지나가고 한결 깊어진 강의 안쪽에서 푸른 갈댓잎 한 장, 비밀문서처럼 내 앞으로 천천히 흘러왔네 출렁이는 온 강물을 싣고, 그 알 수 없는 고요의 눈동자 반짝이면서 한칸 반 낚시대 끝을 가만히 흔들었네 그때, 별이, 아랫도리 다 벗은 아이 같은 저녁별이 떠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길을 잠시 비추었네 누군가의 한 생이 물결처럼 환히 몸 뒤집었네

-전동균(1962~  )

한 낚시꾼이 있었다. 어느 터에 고기가 잘 나온다는 소문을 피하는 한 낚시꾼이 있었다. 그가 낚는 것은 월척(越尺)도 아니고, 세월도 아니고, 노심초사도 아니고, 와신상담도 아니다. 여유 또한 아니며, 체념도 아니다. 그가 낚고 싶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자 들오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낚시꾼 앞을 지나가고 갈댓잎도 그 뒤를 이어 흘러 지나간다. 지나가다가 낚싯대를 친다. 문득 깨닫기를 자기가 그 갈댓잎 위에 앉아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를 낚은 셈이다.

우리 모두는 갈대 같은 배를 타고 강의 안쪽에서 바깥쪽을 지나고 아득한 저 별까지 가야 하는 존재들이니, 아옹다옹들 하지 말자. 배가 뒤집힌다. 그래도 다행이야. 별이 아직 어려서…. 우리보다 오래 우리를 지켜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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