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歸天)/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기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
촌 놈/천상병
나는 의정부시 변두리에 살지만
서울과는 80미터 거리다
그러니 서울과 교통상으로는
별다름이 없지만
바로 근처에 논과 밭이 있으니
나는 촌놈인 것이다
서울에 살면
구백만 명 중에 한 사람이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가 않다.
촌놈은 참으로 행복하다
나는 노래 불러야 한다
이 대견한 행복을
어찌 노래 부르지 않으리요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의 노래는 하늘의 것입니다.
--------------------------
행 복/천상병
나는 서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강 물/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새/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은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일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情感)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詩그리고詩 > 한국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간 밖 공간에도 봄이 살아난다/김지향 (0) | 2012.07.19 |
---|---|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이생진 (0) | 2012.04.13 |
봄봄봄 그리고 봄/김용택 (0) | 2012.04.04 |
낙동강(洛東江)/안도현 (0) | 2012.04.03 |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김용택 (0) | 2012.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