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공간 밖 공간에도 봄이 살아난다/김지향

시인 최주식 2012. 7. 19. 21:49

 

공간 밖 공간에도 봄이 살아난다/김지향

어제는 사이트와 사이트 사이를
마구잡이로 들락거린 세상소리를 마셨다
오늘은 모두가 한꺼번에 세상소리로 뒤엉켜
고속 메일이 되어 천지사방에 흩어진다

삶을 짜서 널어놓은 빨랫줄 밑에서
뚝뚝 떨어지는 삶의 옹아리를 받아먹은
씨앗들을 마우스에 담아 나는 수평선 저쪽
가물거리는 안개나라에 보낸다
어느새 안개는 없어지고 파란 풀밭이 태어난다
풀밭 속에서 살살 풀리는 햇살을 등에 엎고
휘파람으로 불어오는 새파란 바람을 받아먹는
병아리떼,

놋쇠 자물통 아이디를 훔쳐 열고 쫓아나온
성급한 노란 병아리 몇 개비 꽃대궁에 끼워져
하늘하늘 팔짱을 걸고
빨래 대야에 고인 생 에너지를 쪼아먹다
노란 꽃으로 피어난다

(사이트와 사이트 사이 줄다리기하는
고속 안테나 위에서 누가 먼저 정보를 누설시키나
싸움판을 벌이는 마우스의 숨가쁜 속력을 타고
금빛 날개를 파닥거리는 수도 없는 메일들이
내게도 와락 달려든다)

가장 먼저 받은 이름 없는 메일을 연다
날개를 편 봄이 내려선 공간 밖 공간의
성 베네딕트 수도원 뜰 잔디밭에 쫑쫑쫑 뛰어가는
방금 마악 배꼽 떨어진 봄을 한입 가득 따 넣은 메일
나는 숨차게 따라가며 봄 꼭지를 클릭하고 또 클릭한다

세상은 온통 샛노란 물감통에 빠져
진저리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