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탁란 - 강희안
저 흉악한 오리는 대체
몇 개의 알이나 닭의 둥지에 숨겨놓은 걸까
까끌까끌한 보리 모개를 먹었는지
오리들이 꽤액 꽥 숨넘어가고 있다
둥근 주둥이를 벌리며 목청을 세우고 있다
가끔씩 닭의 문간에선
병아리의 부화가 시작되었는지
콕콕콕, 생명의 코크를 여는 소리, 소리...
게슴츠레 눈을 뜬 병아리들이
일제히 희디흰 부리를 치켜들고 있다
그놈들은 빛을 두려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므로
누구도 애써 눈을 감지 않는 것이다
잠시 눈꺼풀에 걸려 있던 졸음이
세계를 한번 기우뚱거리게 했을 뿐이다
스스로 진공의 주검을 깨뜨린 자만이
온전한 몸을 얻을 수 있는 법
오리들이 구룩구룩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금단의 영역을 기웃대자
어미닭이 날카로운 부리로 go! gogogo!
저리 썩 물러나라고
잠시나마 서슬 붉은 눈을 부라렸던가
저리도 여린 발길질에
끄덕끄덕 당찬 계관마저 조아렸던가
어미닭이 두꺼운 오리알을 쪼아대는 사이
그들은 그간 열심히 부풀린 부리로
차디찬 어둠을 베어 물 것이다
어미를 잃은 기억은
다시금 누군가의 부재로 대체될 것이다
새로 물려받은 넓적한 부리조차
곧 제 몸을 불리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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