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 한그릇/ 정이랑
태어나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드리지 못했다
올해 칠순의 늙은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는 국밥
눈동자 한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할 말이 없다
"고기가 많네요, 아버지."
아직도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릇으로 고기 건네고
"이것만 해도 많다, 너나 많이 먹어."
갔던 고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여전히 김은 모락모락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목구멍으로 울컥 올라왔다
서른이 넘어 자식 낳고 살면서 그 흔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감사하다'는 마음 표현하지 못했다
덜컹덜컹 유리문 밖으로는 바람만 불고
비라도 오려는지 플라타너스 잎들이 손바닥 펴들고 있다
넘어가지 않는 국밥 꾸역꾸역 밀어 넣기만 하는데
푹 파인 이마의 주름살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이제 구슬구슬 빗방울도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국밥 한 그릇 뚝딱 비우시고
집으로 돌아가셔야 한다며 527번 버스를 타셨다
그저 버스의 꼬리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이렇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언제 다시 대접할 수 있을까
시간의 기둥을 잡고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비는 그치지 않고 발가락 사이로 침범하며 걸어가고 있다
오늘 하루 어둠이 내릴 때까지 나도 우산 없이 걸어가 봐야겠다
- <시평> 201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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