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유혹/박 성순

시인 최주식 2012. 4. 25. 23:02

유혹/박 성순

 

너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다 까지도 않은 귤처럼

칼도 대지 않은 채 옷을 훌 훌 벗어버리고

길들여 지지 않은 망아지 처럼 달려간다.

 

아라바에서 중국 저 흑룡강 산 골짝까지

지칠 줄 모르고 걸어온

소금쟁이 당나귀의 헛 웃음처럼

너를 향한 그것이

짜디짠 소금 물이

아랫도리를 적신다.

 

내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길섶에 누워

망가지는

잡풀이 된다.

신이 그때는 눈을 감아 주시겠지

하얗게 피어난 배꽃들도

그때는 잠시 잠을 자겠지.

 

여수 순천 달리는 고속도로

온 통

너의 유혹에 찢긴

내 속옷거지들이다.

온 통

연분홍 꽃으로 깔린

처녀의 이불이다.

 

갑자기 허연

조팝 꽃들이 비웃으며

튁튁 튀겨가며

아무도 보지 않는

이불 속을

몰래 훔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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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계절마다 운명이 있다면 봄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운명일 것이다. 꽃 펴야 잎 나고, 잎 나야 꽃 피는 생명력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얼마나 설레이는 일인가? 첫 연 <너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다 까지도 않은 귤처럼/칼도 대지 않은 채 옷을 훌 훌 벗어버리고/길들여 지지 않은 망아지 처럼 달려간다.>는 일년에 단 한 번 찾아오는 대자연의 깊고 오묘한 봄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나를 이해하여 주는 좋은 친구,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는 착한 사람을 찾아 옷벗어 던지고 숨가쁘게 달려가는 인간적인 풍상이 아름답다.

 

제 4연 <여수 순천 달리는 고속도로/온 통/너의 유혹에 찢긴/내 속옷거지들이다./온 통/연분홍 꽃으로 깔린/처녀의 이불이다.>에서는 차창을 통해 따뜻한 속삭임과 달콤한 향기가 들어온다. 봄이면 꽃으로 다시 피어나고픈 유혹, 나무와 풀 그리고 새와 나비로 태어나고픈 유혹, 그 유혹들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여수 순천 고속도로를 달리니 봄이 눈앞에 펼쳐진다. 진달래와 벚꽃 그리고 목련과 조팝꽃 등 대지는 온통 꽃천지다. 보이는 것마다 가족같고 애인같은 봄날의 풍경에 홀딱 넘어가고 싶다. (최주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