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공현혜
아지랑이는
하나 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결코 안아 줄 수 없는 하늘과 땅이
햇살이 쏟아지는 허공에서
서로 무엇이 되게 하고 싶은 것이다
많은 말(言)이 길 잃고 쓰러진
얼어붙은 마음의 땅 깨우고
매장 할 수 없는 온전한 담장
시작점을 알 수 없는 하늘을 달래어
제 몸을 녹여 용서를 하는 것이다
아지랑이는
혼자 살지 않는다
아지랑이는
끝없는 계절의 윤회속에 갇혀도
하늘과 땅사이 어디에나 달려가
너를 안아주고, 너를 토닥이고. 또...
아지랑이는 혼자 살지 못함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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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봄> <망초꽃> <그럴 줄 알았지> 등 공현혜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 깊숙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시인임을 느낄 수 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시가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으로 다가오는 보편적인 감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친밀감을 주고 있다. 소개되는 <아지랑이>도 균형과 긴장으로 풍요로운 언어의 숲을 이루고 있다. 아지랑이를 통해 꿈같은 세속적 변화를 보면서도 허무하게 느끼지 않고 차분하고 고요한 이미지로 생명의 따뜻함을 보여주고 있다.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느 장편소설 못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하늘과 땅사이 어디에나 달려가/너를 안아주고, 너를 토닥이고. 또.../아지랑이는 혼자 살지 못함을 가르친다.> 부분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자각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한다. 숨바꼭질하듯 시 행간마다 꼭꼭 숨겨둔 아지랑이는 안아주고 토닥이며 다양하게 변주(變奏)하는데 이런 경지는 현실을 초월한 시심의 자유자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햇살과 햇살 사이에서 너울거리는 아지랑이로 펼쳐보이는 공현혜 시인의 고백이 봄날에 핀 자목련 만큼이나 황홀하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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