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김재기
응달진 산비탈 잡목 사이
우듬지 높은 나무
얽힌 주름에 새겨진 세월이 무겁다
더 많은 햇살을 받으려고
키를 늘리고 가지와 잎을 무성히 매달던
긴 영욕의 세월
바람에 날렸던 티끌 자국이 촘촘하다
바윗돌 피해 이리저리 휘어진 뿌리
절름대며 캄캄한 미로에 발을 내딛는다
큰 키만큼 땅속 깊이 뻗은 다리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 견디고 있다
돌덩이에 부딪힐 때마다 파르르 불꽃이 튄다
보이는 만큼 보이지 않는 것을 감추고
한 발 한 발 걸어온
가파른 돌길
무거운 걸음 멈추고
푸르던 잎사귀들 바람에 날려보낸다
황혼이 깃든 숲속
둥지를 틀던 새들은 떠나가고
쓸쓸한 고목 한 그루 늙은 아버지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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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사람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다. 삶을 아름답게 견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세월의 무늬와 사랑의 철학이 곰삭아 있다. <바윗돌 피해 이리저리 휘어진 뿌리/절름대며 캄캄한 미로에 발을 내딛는다>에서 처럼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감성이나 충동으로 사회를 부유하는 외로운 존재들을 위로하기 충분하다. 관념적인 언어의 도식에서 벗어나 있어 쉬우면서도 깊은 맛이 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문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사람이며, 시 또한 삶과 떼어놓을 수 없어 끊임없이 생존의 문제을 파헤친다. 그래서 김재기 시인은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말하듯이 <보이는 만큼 보이지 않는 것을 감추고/~생략~/쓸쓸한 고목 한 그루 늙은 아버지처럼 서 있다.>고 한다. 그렇다. 아버지는 황혼이 깃든 응달진 산비탈에 서 있는 떡갈나무 같은 존재다. 경험적 성찰을 바탕으로 떡갈나무를 통해 아버지가 회상의 풍경속에 들어오고 그리움의 빛으로 착색되어 다가온다. 이 화사한 봄 날, 아버지가 그립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 않을까?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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