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농사 호박 농사
지붕엔 성기성기
박 덩굴 퍼지고
하양 꽃이 만발
아기 박이 동글
울타리엔 엉기엉기
호박 덩굴 퍼지고
노랑 꽃이 만발
아기 호박 동글
우리 집도 옆집도
오곤자근* 똑같이
지붕엔 박 농사
울타리엔 호박 농사
―권태응(1918~1951)
*오곤자근: 권태응 시인의 시에 자주 나오는 말로, '서로 매우 정답게 지내는 모양'이란 뜻인 '오곤조곤'과 비슷한 의미로 보임.
삼월삼짇날에 제비가 물어온 씨앗이었을까? 사람들은 제비가 돌아오면 처마 밑이나 울타리에 박씨와 호박씨를 심었다. 지붕에 하얀 박꽃, 울타리에 노란 호박꽃이 피면 집이 온통 꽃 대궐 같았다. 밤에 피는 박꽃에는 조무래기 별들이 반딧불처럼 날아와 숨바꼭질을 하고, 호박꽃은 아이들이 따다 소꿉놀이를 했다.
허름한 지붕엔 으레 박 덩굴이 뻗어 온통 하얀 박꽃이 피었다. 달빛에 피어난 박꽃은 누추한 우리네 삶을 누이의 하얀 치마처럼 가려주었다. 아이들은 호박꽃 봉오리에 반딧불을 잡아넣어 만든 호박꽃 초롱을 들고 밤이슬에 젖어 뛰어다녔다. 별처럼 총총총 피던 박꽃과 호박꽃이 시나브로 지면 어느새 아기 주먹만 한 박과 호박이 열렸다. 그러면 모든 집이 오곤자근 똑같이 흥부네 집처럼 부자가 된 듯했다. 지붕엔 박 농사, 울타리엔 호박 농사 풍성했듯이 금년에도 흥부네 집처럼 풍성한 농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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