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내 사랑은/박재삼

시인 최주식 2012. 5. 9. 22:46

내 사랑은/박재삼

 

한빛 황토(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박재삼(1933~1997)

사랑 노래는 시 중의 꽃이다. 이 시조는 숱한 사랑 노래 중에도 압권으로 꼽힌다. 시조와 시를 같이 쓴 박재삼의 한국적 정한(情恨)이 서린 명편 중에도 단연 최고다. 애틋한 사랑의 여운 속에 율감 높은 말들이 감칠맛 나게 가락을 타고 감긴다. 게다가 '몸으로 사내장부가 우는 밤'이라는 절규에 등불 타는 소리까지 가슴을 친다. 들기름불이 앓다니, 그것도 지지지 지지지 앓다니! 어느 사내의 가슴이 통째로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볕이 한층 밝아지고 있다. 봄볕에 더 말갛게 찰랑거리는 여울께를 가거든 그 중 글썽이는 조약돌을 하나쯤 집어야겠다. 그래서 내 사랑에게 보내는 귀엣말처럼 볼에도 대어보고, 가만히 눈물도 적셔 주리라. 올봄에는 그렇게 부신 한때를 기어이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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