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꽃사슴/유경환

시인 최주식 2012. 5. 9. 22:47

꽃사슴

아가의 새 이불은
꽃사슴 이불

포근한 햇솜의
꽃사슴 이불

소로록 잠든 아가
꿈속에서

꽃사슴 꽃사슴
타고 놉니다.

—유경환(1936~2007)

요즈음엔 동네에서 아기를 볼 수 없다. 예전엔 골목길에서 놀던 여자아이 등에 업혀 쌔근쌔근 잠든 아기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 어렵다. 집집마다 저녁이면 쌀 씻는 소리와 함께 저녁 불빛처럼 번져 나오던 아기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기의 탄생처럼 큰 축복이 어디 또 있으랴. 아기가 태어나면 포근한 햇솜의 새 이불을 준비한다. 꽃사슴이 수놓인 햇솜 이불을 덮고 아기는 소로록 잠든다. 꿈속에서 아기는 꽃가지 같은 사슴뿔을 잡고 꽃사슴을 타며 놀 것이다. 이렇게 자란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행여 다칠세라 엄마는 비로 마당을 쓸고, 까치는 새봄 새잎 같은 새 이빨을 물어다 주리라. 신부처럼 하얀 깃털의 황새가 아기를 데려온다는데, "황새야! 덕새야! 아기 데려오너라" 하고 어릴 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면 황새가 아기를 데리고 오려나?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골목길은 너무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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