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비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다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 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이제하(1937~ )
친구들과 조그만 잔칫상을 벌였다. 간혹 촌스러운 친구의 입에서는 옳으니 그르니가 나오기도 하지만 꽃밭처럼 흥겹기만 하다. 작약은 작약의 사투리로 말하고 민들레는 민들레의 음성으로 말하고 바람은 바람의 혀로 재잘대고…. 잔을 세지 않고 술을 권하지 않고 제답게 먹고 떠드는 좋은 잔치를 벌였다.
그 재미도 끝나고 거리에 나선 길, 비가 온다. 가랑비가 온다. 보소, 보이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가랑비다. 함께 가랑비 속을 걷던 그녀는 지금 뭐 하고 살까? 가랑비가 붙잡는다. 주머니가 텅텅 빈 이 사내는 과연 패배자인가? 사랑한다고 따라붙는 사월의 가랑비가 있는데도? 비 끝에 새싹이 돋으리. 새싹으로 돌아가 다시 살고 싶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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