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집/고은

시인 최주식 2012. 5. 31. 23:26

집/고은

 

안에서
삽사리 꼬리 기쁨이 마중나왔다
안에서
내 마음이 마중나왔다

철모를 벗고
총을 내려 놓았다
탄띠를 풀었다

황소가죽 워커를 벗고
왼발부터 양말을 벗었다
맨발 둘이 새싹인 듯 불쌍하게시리 나와 있다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울음이 이루어졌다

―고은(1933~  )

이것은 다큐멘터리인가? 역사인가? 르포르타주인가? 저 행간은 한껏 젖어버린, 들추기 무서운 이야기가 가득한 빈집이다. 제 집에 맘 놓고 들어설 수 없는 사내, 기웃거렸으리. 그때 기르던 삽사리의 마중에 비로소 마음 내려놓는 집, 그 순간의 환한 자유! 잠시 명령에서 벗어나, 소가죽 워커(걷어차고 걷어차였으리!)에서 벗어나 맨발이 된 이 사나이. 맨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둘이 되는, 둘이란 게 불쌍하리만큼 반가운 빈집. 혼자서 온 식구가 된 집. 잠깐 사이 거짓처럼 비어버린 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내의 사진에서는 왜 울음이 솟는가.

울음을 이루는 집이니 그 처마마저 흐느꼈으리. 참으로 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