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보다 지혜로운 종교인이 많았으면/최주식
현대생활이 복잡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종교에는 현실을 초월한 신앙적 규범인 계(誡, 戒)가 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십계명, 불교는 오계를 포함한 여러가지 계율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신도들을 바른 생활로 인도할 다양한 신앙적 규범, 즉 내면적 규율이 있다. 종교인이 계를 잘 헤아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종교인, 지혜로운 종교인이 될 수 있다. 기독교의 십계명은 (①~④항 생략) ⑤ 네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둑질하지 말라. ⑨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등이 있으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천주교의 십계명은 (①~③항 생략) ④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⑤ 사람을 죽이지 마라. ⑥ 간음하지 마라. ⑦ 도둑질을 하지 마라. ⑧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⑨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⑩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로서 모두가 십계명을 소중한 가르침으로 삼아 사랑을 실천하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불교는 여러 계율 중 십중계(十重戒)는 ① 살생을 하지 말라. ② 도둑질하지 말라. ③ 음행하지 말라. ④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 술을 팔지 말라. (⑥~⑩항 생략)이며, 인간 관계에 대한 연기(緣起)적 관점의 계율이다. 따라서 확실한 믿음의 증표로 세레나 수계를 받은 사람이라면 참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도, 도덕적 타락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계명이나 계율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세계를 놀라게 할 큰 건물을 가진 종교의 종교인들이 진실성과 정직성으로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계를 지키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주변을 보면 성경이나 불경 등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관이나 재물과 권력에 빠져 종교인으로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식이 많은 종교인과 지혜로운 종교인은 다르다. 예를 든다면 일자무식임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신앙생활을 하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글을 통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지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익힌 지혜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종교인은 청정한 마음으로 계를 지킬 때 어떤 두려움이나 근심이 없어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다. 따라서 게으르지 않고 자기 질서가 있으며 잘못된 길이라면 망설임없이 바른 길로 간다. 많은 정보와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이 시대에 계만큼 사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계를 지킬 때는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종교적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역기능으로서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따라서, 계를 지키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람의 도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도리와 종교의 도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 중에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략)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의 편지 2,14-17, 공동번역)>라는 내용이 있는데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늘 계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맑은 마음과 진실한 말, 정직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다스려 우리 사회를 아름답고 따뜻하게 하여야 할 것이며, 이것이 종교인 스스로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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