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한 盞 걸쳤다/김용민

시인 최주식 2012. 6. 21. 13:12

 

한 盞 걸쳤다/김용민

 

꽃 냄새 밤새 진동하여
도대체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한 잔 걸쳤다
오월, 때아닌 감기 들린 자처럼
후텁한 불망토 하나 걸쳤다

시간들은 모를 것이다 나를
수 없이 점령해 왔을지라도
나는 오직 단 1분에 장악된다
어떤 사상도 물질도 공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심령 속에 이글대는 불잉걸
정수리에 쏟아지는 불우레

골수에서 솟구치는 불기둥

내 빛의 조율자
내 침묵의 조각가
내 현을 다스리시는 단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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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는 자신만의 향기와 빛깔이 드러나는 창작 방식이 있는데 김용민 시인의 다양한 시심들은 언제나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 시란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시와 몸이 하나가 되는 시를 더 감상하려 노력한다. 소통은 잘되는 것 같지만 웬지 뒤로 빠지게 되는 시 보다는 진정성이 보이는 시가 좋다. 한 잔 걸쳐야 시가 나오고, 한 잔 걸쳐야 힘도 나오고 용기도 있고, 한 잔 걸쳐야 능청스런 노래와 어깨춤이 나오는 살맛나는 세상, 한 잔 걸쳐서 풀리지 않는 일이 어디 있는가?

 

한 잔 걸치고서 이 악물고 버텨야 <심령 속에 이글대는 불잉걸/정수리에 쏟아지는 불우레/골수에서 솟구치는 불기둥> 같은 세상에 대한 믿음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나오리라. 행여라도 고단한 세월이거든 밤낮을 한숨과 탄식으로 보내지 말고 한 잔 걸쳐보라. 어찌 연민마저 없겠는가.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내면의 숙성을 위한 강한 정신이다. 자신의 시심에 치열할수록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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