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호흡/김 희

시인 최주식 2012. 6. 5. 22:38

 

호흡/김 희

 

침묵의 시간 고요한 호흡으로

세상의 문을 여는 태양의 부름에

아무 대답 없는 잔잔한 호숫가

한가로이 물새를 따라 굽이쳐 흐르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공허

무상한 마침표 위로 침묵하는 바람이 된다.

 

허공 가득히 뜨거운 열정을 내뿜으며

밀물과 썰물처럼 마음을 다독여

내 몸에 모든 것을 내놓고 들여 놓으니

해넘이 물빛에 굵은 파문을 그리는 나이테

동녘 하늘 노을을 품고 여린 달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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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가장 싱그러울 때는 뙈약볕이 삶에 경례를 부치는 여름철이다. 그늘이 그리운 계절이지만 한 호흡에 시원하게 잠을 청할 수 있고, 한 호흡에 나를 괴롭히는 거대한 무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 자유자재한 한 호흡에 태산같은 삶과 죽음이 있고, 한 호흡에 사랑도 선악도 열정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김희 시인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공허/무상한 마침표 위로 침묵하는 바람이 된다.>와 같이 우주적인 넓이를 포괄할 정도로 광대무변한 호흡에 숨은 무수한 소망을 꿈꾸고 있다. 그러니까, 그냥 호흡이 아니라 내 몸에 모든 것을 내놓고 들여 놓는 진리의 별빛 또는 인격적 염원으로서 스스로 치열하고자 하는 자취가 역력하다.

 

좋은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하여 의미를 확산시킨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 <호흡>은 침묵, 공간, 공허, 파문, 노을 등을 보조관념으로 받아들여 방대한 의미를 창조해 내고 있다. 몇 번 김희 시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인으로서는 인문적 정취를, 지식인으로서는 지혜를 느낄 수가 있었다. 김희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한 호흡의 시간만큼만 여유를 가지고 배려를 한다면 세상은 맑고 아름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희 시인에 대한 문학적 애정과 기대의 끈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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