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태양 중독자 - 이은림

시인 최주식 2012. 6. 10. 22:51

[시가 있는 아침] 태양 중독자

태양 중독자 - 이은림(1973~ )

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장엄한 빛들을 쏘아대며 돌고 도는 저것에게 환장하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태양에게
사육당하는 중이다 감염되는 중이다 엉겨 붙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호명한 적 없는 태양에게
부글부글 대드는 중이다 막무가내 달려드는 중이다 내 시야의 전부이지만 단 한 번도 응시한 적 없는 태양에게, 저, 붉은 것에게

그러니, 이제는 말하자 왜 아직 나는 증발하지 못했는가 왜 아직 고여서 출렁이는가 갈증은 왜 내게 고통이 아닌가
데인 상처는 너무 쉽게 흉터가 된다 태양은 악착같이 이글거리고, 너는 또다시 증발되는 중이지만

시의 인물은 반딧불처럼 작고 약한데도 포기를 모른다. 섬김과 감염과 대듦이 뒤엉킨 저 은은한 착란 상태를 삶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때로 제 운명의 시간을 알고 싶어 미친다. 사랑 없는 사랑 앞에 조아리고 앉아 어서 목을 쳐주길 기다리는 사랑이 되어. 한 말씀만 기다리는 기도가 되어. 무언가에 미친다는 건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 이를 해 아래 영문 모르고 던져진 모든 반딧불들이 지녀야 할 제정신이라 하면 안 될까. 그러니, 중독자로서 말하자. 내가 “나”인지 “너”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 이 시간은 고통이 아니라고. 괴롭고 행복한 열광이라고. 태양 홀릭은 태양 경배라고.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