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병들어보지 않으면 - 코우노 스스무

시인 최주식 2012. 6. 10. 22:53

[시가 있는 아침] 병들어보지 않으면

병들어보지 않으면 - 코우노 스스무(1904∼1990)/ 허요하 옮김

병들어보지 않으면 바칠 수 없는 기도가 있다
병들어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있다
병들어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말이 있다
병들어보지 않으면 가까이할 수 없는 성전이 있다
병들어보지 않으면 우러러볼 수 없는 얼굴이 있다
아- 병들어보지 않았으면
나는 인간이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목회자 시인의 시답게 병 체험이 곧 신비 체험임을 숨기지 않고 있지만, 인간은 태어난 그대로가 아니라 ‘되는’ 것이라는 전언은 뭉클한 데가 있다. ‘되는’ 것이 곧 ‘태어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기도와 기적과 말씀으로 이어지는 고백은 겸허하고 확신에 찬 소생의 변이니까. 그는 병원에서 나아 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 같다. 사제는 아픈 사람으로서 치료하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 나환자들에게 헌신했다고 한다. 이 시의 전언에 동의하는 나는, 모든 인간이 결국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 온 지 오십 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