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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부형(腐刑)을 당한 것이 그의 장년에 이르러서인데, 시는 어째서 그에게 사랑의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녀가, 그의 몸에 내린 저주를 연민했음이리라. 사랑해본 기억이야말로 거세당한 몸을 절망에 빠뜨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몸을 일으켜 세운 힘 또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서, 그리고 악창을 벗고 일어선 욥에게서 희망을 구할 때 그러했듯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그래서 다시는 사랑을 잊을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무언가 다른 것이 시작되었다. 한 남자는 홀로 앉아 오줌을 지리며 죽간에 새겼고, 한 여자는 가슴 하나를 암에 바치고 종이에 썼다. 잊을 수 없는 몸이 결국 역사가 되고 역사소설이 되지 않았던가. 그들이 붓으로 살려낸 인간의 수를 헤아리다 보면, 사랑의 기억은 사랑의 현재이고 미래인 것만 같다. 우리는 모두 사마천과 박경리의 진실 안에 살고 있다. 역사 속으로, 역사소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달리 어디로 갈 것인가.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