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 떼 가득한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 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몸 없는 그가 얼굴을 만지네. 그는 계곡물에 치자 향을 묻히며 잠결로 왔네. 내가 간절히 정신 놓으면 그는 불현듯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네. 그의 휘파람이 이승 쪽 출구를 포근히 잠그면, 밤도 낮도 아니며 꿈도 생시도 아닌 곳에서, 죽은 그와 몸 섞는 나는 결코 눈뜨고 싶지 않으리. 죽은 이를 여전히 사랑하는 죄로, 눈뜰 힘조차 없으리. 햇빛이 여기저기 기둥을 세웠다간 흩어지듯 나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울 수 있겠네. 나비 날개를 달고, 그 숨결에 이 숨결을 포개어 반드시 소리 죽여 울어야 하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때로 젖먹이처럼 때로 강아지처럼 나는 자꾸 돋아나 그의 품에 안길 수 있다네. 아무렴, 자꾸만 발돋움해서 그의 허공을 살처럼 만져볼 수도 있다네.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