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 - 문태준(1970~ )
오늘날에도 유형(流刑)이라는 형벌을 시행하는 국가가 있다면
나는 그 나라에 가 죄를 짓고 살고 싶다
12월당원처럼 강제로 먼 곳 극지로 내몰릴 때, 국가여
부디 나를 풀잎 속에 가두어 주소서
벌레 속에 가두어 주소서
바위 속에 가두어 주소서
어느 누구도 전생에든 후생에든 풀잎과 벌레와 바위의 몸을 받기를 원하지는 않으리
오만하고 값싸고 변덕스런 국가여
그대가 생각하는 극형으로
나를 선처해다오
거짓말 같지만,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나라가 유형을 시행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개인을 자유 없는 자유 속에, 죽음 없는 죽음 속에 유배시킨다. 우리는 매일같이 인간을 살려주지만 결코 완전히 살려놓지는 않는 그곳에서, 죄짓고 살고 있거나 없는 죄를 지고 태어나 있다. 12월당원들이 시베리아로 내몰렸던 사실을 빌려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를, 구성원 대다수가 남북 양극으로 몰린 어느 가혹한 행성에 비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풀잎과 벌레와 바위의 처지를 결연히 선택하자, 텅 빈 윤회설의 내부에서 어떤 저항의 태세가 솟아난다. 저 거듭 쓰인 높임 표현을, “극형”을 “선처”로 비트는 인식을 그가 수용한 “위대한 거절”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영광·시인>
'詩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성 16 - 김영승 (0) | 2012.08.10 |
---|---|
가을의 소원/안도현 (0) | 2012.08.10 |
강상치수 여해세 요단술(江上値水 如海勢 聊短述) -두보 (0) | 2012.06.21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0) | 2012.06.10 |
기차를 기다리며 - 백무산 (0) | 2012.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