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날아가는 방/유성찬

시인 최주식 2012. 8. 9. 23:40

아가는 방/유성찬

 

이삿짐을 다 싸두고도 아내는,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하나 어쩌지 못하나보다
산동네 반 지하 단칸 방, 그 밤 내 이삿짐을 싸다가
방안 가득 걸어둔 종이학들은 거두지 못한 채 
잠이 든 척 누운 아내,
허공에다 뭘 저리 걸어두었나
날아오른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어디로든 떼 지어 날아갈 성 싶다

이 방마저 가져갈 수 있다면 좋으려만,
자꾸만 한숨소리에 침몰해 버릴 듯한
半地下의 방,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내일 아침 자고일어나면 어디든
다른 곳에 살고 있다면
좋겠다는 아내

어디로 갈까
막막한 마음에 아무리 떠올려 보지만
좀처럼 갈 곳은 떠오르지 않고
문득, 고향땅 송도다리께를 떠올려본다
아내와 처음 만나 살았던 판잣집
함께 살았던 제비부부는 아직
잘 살고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내 곁에 누워 잠을 청해보는 밤,

멀리, 담장 너머
누구네 집 天井을 이고 가는 중인지,
한 무리의 철새들
무리 지어 떠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부부 누워 잠든 방을 달고
부지런히 이동해 왔을 저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학들이 끌고 가는 저 작은 방 속
어쩌면 어느 九天을 횡단해 가고 있을지 모를
아내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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