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고향 생각/이은상

시인 최주식 2012. 8. 10. 22:41

고향 생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오.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기뭉기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이은상(1903~1982)

 

'고향(故鄕)'은 박제돼가고 있다. 삶이 그래서인가, 말도 빛을 잃었다. 농어촌 자연 속의 공동체 추억을 데려오던 이미지도 소용이 다한 듯싶다. 낡은 상투어나 신파(新派)처럼 시에서도 기피하는 표현으로 밀려난 것이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좀…' 하는 광고만큼의 효과가 안 먹히는 탓이겠다. 시멘트 숲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더 많아지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오래된 시에서는 고향이 여전히 눈물겹게 살아 있다. 노래로도 많이 불려 더 살가운 시조에 새삼 고향을 얹어 불러본다. '때 묻은 소매'에 어른대는 고향의 표정들…. 그 소매에 꼭 눈물을 훔칠 것만 같은 마지막 대목의 여운이 길게 번진다. '내 고향 남쪽바다'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푸르게 펼쳐준 시인의 또 다른 바다가 오늘은 혼자서 출렁거린다. 아, 그 바다에 가서 하염없이, 하릴없이 출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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