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明器/이문재

시인 최주식 2012. 8. 10. 22:40

明器

나는 苦生해서 늦게
아주 늦게
가고 싶다
가장 오래된 길에 들어

저승 가서 사용할
이쁜 그릇들, 明器
이승 밖에서
무덤 안쪽에서 오래
써야 할 집기들

사람은 돌아가고
미래는 돌아온다
사람은 미래의 작은 부장품

나의 부장품일
이 느슨한 고생
이 오래된 미래

―이문재(1959~  )

유재일
우리가 박물관 같은 데서 만나는 아름다운 그릇들의 많은 수가 옛 무덤에서 나온 이른바 명기(明器)들이라는 사실은 잠시 청신한 죽음의 사색을 가지게 한다. 저승의 살림살이를 아름답게 꾸미라는 이승의 마음들, 혹은 저승의 살림이 이승의 것보다는 좀더 맑았으면 하는 바람들이다. 그 마음의 문양을 통해 우리는 조선으로도 가고 저 찬란한 고려나 신라로도 가본다.

오래 사는 일은 오래 고생하는 일임에도 우리는 오래 살아야 한다. 왜? 그것이 생명(生命), 즉 하늘의 명령이니까. 우리들의 고생은 저승에 가서 면한다. 부(富)와 명예(名譽)가 그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오래된 학설(?)'이다. 아름다움이, 선함이 그것을 얼마만큼은 면해준다는 것이 또한 '오래된 학설(?)'이다. 하니 이승의 고생이 부와 명예도 좋겠으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라면, 선함을 위한 것이라면 이 '오래된 미래'는 밝은 그릇처럼 빛나지 않겠나. 고생이 얼마쯤 달콤하지 않겠는가.

'가슴으로 읽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석/이창건  (0) 2012.08.10
고향 생각/이은상  (0) 2012.08.10
꽃/이덕규  (0) 2012.08.10
익는다/이상교  (0) 2012.08.10
지게/김영승  (0) 201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