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가인가, 낭독자인가?
시인은 시를 쓰고, 시낭송가는 시를 낭송한다. 시를 쓰는 시인은 시를 쓰면서도 중얼거리거나 읊기도 한다.
중얼거리는 것은 주술적인 영감과 시의 가락·장단의 호흡을 맞추려는 무의식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시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심상(心象)에 의한 내재율과 외적 형태의 외재율에 의한 호흡을 간추려가며 써야하기 때문이다.
읊는다는 것은, 내면의 심상을 언어 미학으로 형태화해서 다시 소리로 뜻을 간추려 보려는 것이다. 흥이 나면 시를 읊을 수도 있다. 쓴 시나 쓰기 전의 시적 감흥을 읊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무의식에 잠재해 내려오고 있는 '범패'류의 존재 음악 분출 작용이다. 시의 소리(음악성)와 뜻(주제)을 간추릴 때는 읊거나 중얼거림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시를 쓸 때는 주로 중얼거리기도 하지만, 다 쓴 다음에는 한 번씩 읊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야 쓴 시의 약점도 들여다 볼 수 있고, 다시 고쳐 볼 수가 있다. 이럴 때 낭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낭독은 듣는 이가 있어야 하고, 듣는 이가 장단점을 지적해 주거나 그 시낭독자에 대해 반응을 보여줘야 시인이 시를 고치는 데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낭독'이란 그저 소리내 읽는 것이다. 국어책을 읽듯, 수필이나 소설들을 남 앞에 목소리로 전달하는 행위일 뿐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감정도, 개인의 육체적인 기교도 연기력도 필요 없다. 그저 읽어내려 가면서 독자나 청중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감동하거나 느끼는 것은 읽는 이보다는 순전히 듣는 이의 몫이다. 그러나 '낭송'은 다르다. 읊거나 중얼거림을 거친 다음 단계의 행위다. 완성된 시를 시인 자신이나 제3자가 전달하는 행위 즉 연희에 속한다. 그러므로 시낭송가는 읊음을 뛰어넘어 낭송해야 하는 것이다. '낭송'이란 말 자체가 원래 소리의 음악성을 뜻한다. 시의 음악(내외재율)을 뜻과 함께 재해석해서 낭송가 자기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해 전달하는 연희의 몫이다. 완성된 시는 '낭독'이 아니라, '낭송'을 해야 남에게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는 연극 대본을 배우가 대신 소리와 육체로 그 작품 속의 상황과 삶을 다시 소화해서 살려내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다시 말해 시를 외워 전달하는 모임은 '낭독회'가 아니라, '낭송회'이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시낭독협회'가 있고, 여기서는 주로 수필가들이 모여 시를 낭송 아닌 '낭독'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낭송'과 '낭독'은 구분돼야 한다. 시는 '낭송'이어야 하고, 산문은 '낭독'이어야 한다. 수필을 '낭송' 해서도 안 된다. 낭송을 하면, 낭독이 안되고, 낭독을 해야 전달이 잘 될 수 있는 산문의 분위기가 깨지기 때문이다. 산문 속에는 음악성과 소리의 형태미보다는 뜻(사고)과 줄거리(얘기)의 미학이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낭독을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반드시 '시낭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옳은 말이다.
'낭독' 이라 하면 시낭송가는 '낭독가'가 되어버린다. 낭독가 몫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 '동화구연가'는 바로 낭독을 잘 하는 산문 낭독가이다. 이런 것은 일반적으로 성우들이 더 잘 해낸다. 직업이 성우니까, 목소리배우니까 그렇다. 하지만 낭송가는 '가'를 뛰어넘는다. '者'(놈)도 뛰어넘고, '手'(손)도 뛰어넘고, '사'(師→士)도 뛰어넘고, '사람'(人)에 가까운 '일가'(一家)의 - 시인에 가까운 '인'(人)이 곧 시낭송가이기 때문이다. 시낭송가가 '시낭송 가인(歌人)'이나 '시낭송인(人)'의 칭호를 받으려면 시낭송가로서의 개인의 일가를 이룬 다음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실로 '시낭송가'를 앞으로 '시낭송인'으로 등급을 높여 불러주고 싶고, 또 그래야 진정한 예술가의 반영위치로 올려 세워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한국의 모든 시낭송가 단체는 '무슨무슨 시낭송가협회'로 고쳐 부르기를 충고한다. 이렇게 되면 시를 쓰는 사람인 시인의 품격도 덩달아 '시낭송인'들 때문에 더 높아질 효과가 크다. 시인과 시낭송인은 혀+이+입술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입술이 있어야 이와 혀가 보호된다. 시인의 입장에서도 낭송가(집)가 낭송인(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 경제가가 자칭 경제인으로 부르는 판(한국경제인연합회)에, 낭송가가 낭송인으로 자칭한다해서 나무랄 일은 없을 것이다.
제발 낭송가가 낭독자나 낭독가·구연가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라도 '낭독' 아닌 '낭송인협회'로 당장 탈바꿈하기를 제안한다.
(2001년 5월 시사랑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