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時調)창작법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시인 최주식 2012. 8. 11. 22:33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 부제 :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사당을 다녀오며 -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오동나무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 오던
한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꽃뫼 마을 고령 신씨도 이제는 아니 오고
금초하던 사당지기 귀래리 나무꾼
고무신 자국 한 줄 눈발에 지워진다.
복숭나무 가지 끝 봄물에 탄다는
삼월이라 초하루 이 땅에 돌아와도
영당각 문풍질 찢고 드는 바람소리
발 굵은 돗자리 위를 서성이다 돌아가고
욱리하 냇가에 봄이 오면 꽃 피어
비바람 불면 상에 누워 옛이야기 같이 하고
서가에는 책이 쌓여 가난 걱정 없었는데*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
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줄을.
눈녹이 물에 뿌리 적신 진달래 창꽃들이
앞산에 붉게 돋아 이 나라 내려볼 때
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
고우나고운 핏덩어릴 줄줄줄 흘리련가.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은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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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을 다녀오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시인이 지향하는 청정한 민족의식을 읽게 해 준다. 늦겨울의 눈발이 내리는 인적 드문 고두미 마을은 을씨년스럽고 적막하다. 시인은 이 적막한 여백에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다. 단재 선생은 복숭 꽃 가지 끝에 봄물이 타는 절기에 이 땅에 돌아온다. 그는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구들장 밑에 오그려 누워 지낸다. 그의 이러한 주체성과 민족애의 기개는 오십 년 지난 물소리가 비켜 흐르는 고귀한 정신임을 시인은 날카롭게 직시한다. 선생의 높은 민족애와 지절은 오늘날 이 땅의 `진달래 창꽃들'로 피어나서 마을을 내려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 / 고우나 고운 핏덩이를 줄줄줄 흘리련가'라는 표현은 오늘날 반드시 단재 선생의 헌신적인 정신이 계승되야 한다는 강한 결의의 표출이다. 군사 독재의 불온한 시대에 단재 선생의 사당을 찾아서 그 고매한 민족정신을 기리고 환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이미 이 땅에 더 이상 불의는 용인될 수 없다는 저항과 항거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해설: 박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