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박영석

시인 최주식 2012. 8. 27. 23:33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박영석

 

 

사십 수 년을 앉아서 걸어온

쑥 한줌 뜯고 싶어 들판까지 택시를 대절했다는

선천성 하체 불구자인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

 

앉아서 음식 만들고 앉아서 가계부 쓰고

앉아서 시를 쓰고 앉아서 기도하는 그녀

하나님이 와도 앉아서 인사할

그녀는 분홍 연립에 산다

 

얼마 전 구강암에 걸려 이빨이 다 물러앉고

광대뼈까지 함몰된 그녀

급기야 좌측 볼에 구멍이 난 그녀

얼굴에 구멍이 나도 참붕어처럼 동그랗고 검은 눈을 가진 그녀

목소리가 풍경처럼 뎅그렁거리는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외출을 한다

휠체어를 타고 분홍연립을 나와 구급차에 오른다

 

이제 가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그녀가

밤새 어머니가 그리웠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골목을 빠져 나가도

 

분홍 연립은 분홍이고

분홍연립은 분홍 밖에 없다

 

박영석 : 1948년 경북 봉화 출생

2004년 <동양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 공이 오고 있다.<2012년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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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색이 주는 아름다움

 

 이 시를 쓰신 박영석 시인은 경북 문경에 산다.

 그 시인이 사는 문경에는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천사’라는 제목으로 중앙 방송에 여러 번 소개된 한 여인이 살고 있다.

 그 여인이 이 시에 소개된 주인공이다.

 실제 앉은뱅이 생활을 하면서도 고아 21명을 자기 손으로 길러 내고 학교 공부를 시키고 시집보내고 장가를 보냈다.

 지금도 고아 아이를 양아들로 삼아 학교에 공부를 시키는 중이다.

 자신이 장애인이면서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고 정상인을 도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기적만 같은 이야기다.

 늘 병원에 실려가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오는 그녀를 보면 정말 하느님이 있기는 있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한다.

 한 번도 일어서 본 적 없는 그녀는 하루도 쉬는 법이 없다.

 앉아서 일하고 돈벌이를 한다.

 참 가슴 아픈 것은 그녀가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을 정상인들이 사기를 쳐서 뺏어 간다는 것이다. 여러 번 사기를 당했으면서도 그녀는 사정이 딱한 사람을 보면 선뜻 돈을 내어 주고는 한다.

 모진 세파에 좌절을 할 법도 한데 그녀는 한 번도 웃음을 잃은 적이 없다.

 그래서 시인은 그녀가 사는 집을 분홍 연립 주택이라고 했나 보다.

 분홍, 얼마나 정감이 가는 고운 색깔인가?

 분홍을 생각하면 그녀가 떠오를 것만 같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너무 고와 금방이라도 다른 물이 들어버린 것만 같은 색깔.

 그러나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분홍의 색깔을 그대로 지키고 유지하고 산다.

 실제로 그녀가 사는 집은 벽돌로 된 아담한 단독주택이다.

 시인은 그 집에다 분홍색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외롭지 않게 연립을 만들어 주었다.

 밤이 되면

 분홍연립,

 그녀가 사는 집에 분홍빛 등이 환히 켜질 것만 같다.

 

 -황봉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