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앉은뱅이저울 / 함민복

시인 최주식 2012. 8. 28. 21:02

앉은뱅이저울 / 함민복

 

 

물고기를 잡는 집에서 버려진 저울 하나를 얻어왔다

 

저울도 자신의 무게를 달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양 옆구리 삭은 저울을 조심 뒤집는다

 

삼 점 칠 킬로그램

무한천공 우주의 무게는

0 이더니

거뜬히 저울판에 지구를 담은

네 무게가 지구의 무게냐

뱃장 크다

지구에 대한 이해 담백하다

 

몸집 커 토막 낸 물고기 달 때보다

한 마을 바지락들 단체로 달 때 더 서러웠더냐

목숨의 증발 비린내의 처소

검사필증, 정밀계기 딱지 붙은 기계정밀아

생명을 파는 자와 사는 자

시선의 무게에서도 비린내가 계량되더냐

 

어머, 저 물고기는 물 속에서 부레 속에

공기를 품고 그 공기로 제 무게를 달더니

이제 공기 속에 제 몸을 담고 공기 무게를 달아보네

봐요, 물이 좀 갔잖아요

푸덕거림 버둥댐 오역하던 이도 지금은 없고

옅은 비린내만 눅슨 페인트 껍질처럼 부러진다

 

저울은 반성인가

 

늘 눌린 준비가 된,

바다 것들 반성의 시간 먹고 살아 온

간기에 녹슨 앉은뱅이저울은

바다의 욕망을 저울질해주는

배 한 척과 같은 것이냐

 

닻 같은

바늘을 놓아버릴 때까지 저울은 저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