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북청물장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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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北靑) 물장사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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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수란 오늘날처럼 수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아침 일찍 물을 길어서 도시의 집집 사이를 다니며 팔던 이를 말한다. 당시 함경도 북청 사람들이 이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식의 학비를 댔다고 한다.) 무장수라고 하면 흔히 북청 물장수를 생각하고는 하였다. 물장수는 살림하는 아낙네들이 일어나 부엌일을 시작하기 전에 물을 가져다주어야 했으므로 첫 새벽부터 부지런히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골에서 어슴프레한 새벽에 닭이 울어서 새벽을 알리듯이, 서울에서는 물장수들의 물 붓는 소리와 ㄹ소리가 새벽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 작품 첫 연이 노래하는 것을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
물장수는 새벽마다 꿈길을 밟고 온다. 이 때의 '꿈길'이란 물론 이 작품의 화자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잠자리에 누워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어렴풋한 새벽잠은 물장수가 물을 붓는 솨아 하는 소리에 그만 깨어난다. 물장수가 실제로 불을 붓는 데는 물론 물독이지만, 그 소리가 잠을 깨우고 신선한 아침을 비로소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는 발소리를 남기며 물장수는 멀리 사라진다. 그 발소리는 잠에서 막 깨어난 이의 가슴 속에 또렷이 남는다.
매일처럼 이렇게 되풀이 되는 가운데 그는 물장수에세 어떤 애틋한 정이 느겨진다. 모든 사물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에 말없이 물을 퍼붓고는 저벅저벅 걸어서 사라지는 물장수는 물만을 길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동이 가득하게 새벽을 길어다 주는 신비로운 심부름꾼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물 소리에 깨어나서 물장수를 불러 보기도 하지만 물장수는 언제나 삐걱거리는 물짐 소리를 내며 멀리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더욱 물장수가 기다려진다.
무심히 여기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적 경험의 한 부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신선한 감각으로 노래한 소품이다. 그가 다분히 신비스러운 느낌까지 덧붙여 표현한 물장수의 모습과 새벽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겨지는 듯하다. (김흥규, 한국현대시를 찾아서, 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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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일상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북청 물장수를 소재로 하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물장수를 하여 자식을 상급 학교까지 보냈다고 하는 그들의 근면성과 건강성을 통해 표현한 20년대의 수작(秀作)이다
이른 새벽, 물지게를 지고 찾아오는 물장수는 '머리맡에 찬물을 퍼부어' 나에게 건강한 하루를 열어 준다. 물 붓는 소리에 어렴풋이 깨어난 내가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어느새 사라진 대신, 고달픈 생활고(生活苦)로 상징된 '삐걱삐걱' 하는 물지게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물장수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과 물장수가 작품 속에서 하나로 합일되는 원숙한 표현 기교를 보여 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즉, 물장수가 '새벽마다 고요히' 시인의 '꿈길을 밟고' 옴으로써 두 사람은 조우(遭遇)하게 되고, 그 순간 시인의 꿈은 시원한 '물에 젖'어 건강한 하루룰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근면하고 성실하여 애처롭게까지 느껴지는 북청 물장수, 그의 근면함이 도시의 새벽을 밝게 만들어 주고 우리의 아침을 풍요롭게 해 준다. 이러한 물장수와 맺어진 아침의 신선한 인간적 정(情)이 시인으로 하여금 '날마다 아침마다' 물장수를 기다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최하 계층인 물장수의 고달프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미화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채 작품 속에 생생하게 용해되어 있다.(양승준외,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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