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추억에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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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追憶)에서
진주(晋州)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안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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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진 그리움 중에서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만큼 크고 보편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지닌 가장 깊은 사랑의 근원이며,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바로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추억한다. 그러나 그의 추억은 한(恨)과 슬픔으로 덮여 있다. 그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살아가던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제5행까지의 앞 부분에서 간결하게 나타난다. 그의 어머니는 진주 장터의 생어물전에서 생선을 팔았다. 해가 다 지고 어둠이 깔리는 어스름 때 아직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몇 마리 고기들의 반짝이는 눈알들…… 여기에서 그는 어머님의 손 닿을 수 없는 한을 생각한다. 그 한이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의 어머니는 오누이를 데리고 홀로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처지였던 것 같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생활의 어려움이 깊은 한과 함께 깃들이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러한 괴로움과 한을 어린 아들에게 내색하지 않을 터이지만, 그는 팔다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갑자기 어머니의 깊은 한을 느끼고는 하였다.
그 다음 부분은 제6행부터 제9행까지로 끊을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방 안에서 손 시리게 떨던 오누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날은 저물어 별이 총총한 밤, 추위에 떨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오누이를 위하여 어머니는 먼 장터로부터 밤길을 걸어 돌아왔을 것이다. 나머지 부분은 다시 어머니의 모습에로 초점을 옮겨간다. 그의 어머니는 진주 남강이 맑다고 해도 어슴푸레한 새벽 또는 별빛에나 그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에서 어머니의 슬픔에 젖은 눈빛을 연상한다. 한번 생각하여 보자. 어두운 밤, 옹기전에 놓여 있는 옹기들, 그 반짝이는 표면에 비추는 달빛…… 그 쓸쓸한 빛이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눈빛을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슬픔을 억제한, 그러나 소년 시절의 그에게 무엇보다도 가슴 깊이 들어와 박혔던 한스런 눈빛이다. (김흥규, 한국현대시를 찾아서, 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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