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장백폭포/김영재

시인 최주식 2012. 9. 10. 22:03

목어는 속 비워야

소리가 맑아지고

밴댕이 속 좁아서

망망대해 제 것이다

장백산

一字 폭포는

떨어, 떨어져야

―김영재(1948~  )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그렇게 박혀 있다. 그래서 천지(天池)를 더 뜨겁게 찾는가.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성소(聖所)라도 찾듯 백두산을 오른다. 하지만 막상 천지 앞에 서면 감회가 치솟는지 대부분 침묵에 든다. 본래 장관(壯觀) 앞에선 말이 없어진다지만, 천지는 다만 마음으로 엎드리게 하는 것 같다. 산정(山頂)의 나직하고 자잘한 꽃들과 수시로 변하는 구름과 바람을 거느리며 천지는 누천 년을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태초의 못처럼, 하늘의 심연처럼.

장백폭포는 하늘못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장엄하게 서 있다. 왜 '장백(長白)'이냐고 묻지 않는다. 이미 '장백산' 입구부터 거대한 중국식 문을 거쳐 천지를 보고 오는 길―. 천지의 물줄기를 그대로 내리쏟듯, 장백폭포는 장쾌하다. '일자(一字) 폭포'는 그렇게 떨어져야 제맛! 그런 폭포 아래 숲에는 자작나무들이 또 얼마나 곧고 희던지! 똑 장백폭포를 세워놓은 양 눈이 시렸었다. 아, 개마고원을 거쳐 백두산에 오를 날은 언제일까.

'가슴으로 읽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밤/유득공  (0) 2012.09.10
맴/김구연  (0) 2012.09.10
뜻밖의 만남/비스와바 심보르스카  (0) 2012.09.10
송붕(松棚)/권필  (0) 2012.09.10
구석/이창건  (0) 201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