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노래
나는 거지라네
몸도 마음도 다 거지라네
천지의 밥을 빌어다가
다시 말하면
햇빛과 공기와 물과 낟알을 빌어다가
세상에서 보고 겪은
온갖 잡동사니를 빌어다가
마른 수수깡으로 성글게 엮듯
잠시 나를 지었다네
달이 뜨면 달빛이 새어 들고
마파람 하늬바람 거침없이 지나간다네
그래도 거지는
빌어 온 것들로 날마다 꿈을 꾸고
빌어 온 물과 소금으로 눈물을 만든다네
나는 처음부터 빈털터리 거지였다네
―김영석(1945~ )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몸뚱이도, 이 마음이라는 것도 본래 없었던 것이니 '거지' 맞다. 잠시 얻어 입고 다닐 뿐이다. 빛과 바람이, 똥과 오줌이 지나갈 뿐이다. 거기 질문 하나쯤은 가져야 사람이리. 너무 얻어 먹기만 하는 건 아닌가? 한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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