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下弦)
머언 기별 같은
저물지 않는 이름 같은
외진 간이역의 늦게 핀 백일홍 같은
서늘한 한 줄 묘비명
하늘 난간흰 하현(下弦)
―정혜숙(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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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원
살기 팍팍한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둥근 보름달 아래 고요히 젖은 동네나 공원을 찾아 걸으면 마음이 조금은 둥글어진다. 월광욕으로 정서적 치유를 해보는 것, 그것도 가을 달밤엔 꼭 누려볼 은은한 여유다.
그 둥글던 한가위 달도 어느덧 하현이다. 하현은 왠지 마음을 더 서늘케 한다. '머언 기별' 같아서일까, '저물지 않는 이름'을 떠올려주기 때문일까, 아련한 무언가가 가슴을 저민다. 그렇듯 소슬히 걸려 있는 하현에서 '외진 간이역의 늦게 핀 백일홍'이라도 겹친다면 한결 더 그러하리. 더욱이 '서늘한 한 줄 묘비명'의 비수를 꽂는다면, 말없이 고개 숙여야 하리. 수많은 시를 낳은 달, 여기 하현에 와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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