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오세영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重量)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 때는 흔들린다.
암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無明)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 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 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핵심 정리]
1.주제 : 삶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인식).
2.제재 : 등산 → 정상(목표)에 이르는 과정
3.성격 : 비유적, 상징적, 불교적
4.표현 : 구체적 상황(등산)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전함.
이미지의 대립(빛 : 정상, 해탈의 경지, 천상 ⇔ 어둠 : 절벽, 암벽, 무명의 상태, 지상)
5.구성
· 1연 : 흔들리는 삶
· 2연 : 쉬지 않고 빛을 찾는 삶
· 3연 : 삶에 대한 진지함과 겸손함
· 4연 : 삶의 목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삶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자일을 타고 오른다. → 산을 오르고 있는 화자의 모습(불안하고 힘들게 오르는 모습)
* 생애의 중량 → 삶의 무게
* 확고한 / 가장 철저한 믿음 → 정상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믿음
* 한 때는 흔들린다. → 화자가 아직은 무명(無明)의 상태에 있음을 의미함.
* 무명 → 절벽,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무지의 상태
* 빛 → 정상(목표),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
* 무명의 벌레 →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화자의 모습. 겸손.
* 결코 쉬지 않는 →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화자의 모습.
* 함부로 올려다 보지 않는다. / 함부로 내려다 보지도 않는다. → 삶을 쉽게 포기할 수도 삶을 쉽게 초월(해결)할 수도 없다는
인식으로, 삶에 대한 진지함과 신중함의 자세가 나타난다.
* 별, 꽃, 이슬, 세상의 모든 것 →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대상.
화려하지만 금방 사라지는 존재. 세상의 유혹. 욕망의 대상
* 내 것이 아니다. → 삶의 목표(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유혹과 욕망의 대상들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가
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됨.
*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 →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감정
* 발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화자의 모습
* 다만, / 가까이, / 가까이 갈 뿐이다.
→ 정상에 도달하는 그 자체보다 도달하기 위해 가는 과정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감상]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마다 화자의 삶의 가치도 흔들립니다.(1연 2~5행) 시적 화자는 밧줄(자일)에 몸을 의지하여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1연 1행, 2연 1행) 정상을 향해 오르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믿음의 흔들림은 그가 '무명(無明)' 속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2연 2~5행) '무명'은 ‘빛이 없다’는 사전적 뜻을 지녔으며,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을 '벌레'로 낮춰 좀 더 부지런할 것을 스스로 다짐합니다.(2연 3~5행) 시인 오세영이 불교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을 볼 때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없습니다.(외재적 관점) 화자는 삶이 어둠 속에서 암벽을 타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지만(벌레, 벼랑, 발붙일 곳 등의 시어에서), 깨달음을 얻은 해탈의 경지가 현실 중단(포기)이나 초월(허무)이 아님 또한 재인식합니다.(4연) 삶이란 서두를 것도 없으며, 행·불행을 따질 것도 아니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4연 6~8행). 작품 전면에 드러난 화자는 해탈한 사람이 아니라 무명 속에서 빛을 찾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그치는 의지가 강한 인물로 형상화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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