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김재진

시인 최주식 2017. 12. 10. 23:19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 재 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게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넣고

떠나라.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그림같은 세상, 2001년)

 

*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이지요. 헤세의 말처럼 둘이 가든 셋이 가든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래서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반려를 찾는 거지요. 그래도 결국은 혼자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시인은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가득한 여운과 투명한 슬픔까지 사랑하라고 합니다. 거기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 

 

* 김재진 1955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일보,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불교방송 PD로 일하였으며 저서로는 『연어가 돌아올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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